윌리엄 하워드 태프트는 미국의 제27대 대통령(1909~1913년)으로 당선되었고 이후에 제10대 대법원장(1921~1930년)에 취임하여 행정부와 입법부 수장으로 재임한 유일한 인물이다.
저명한 법조인이었고 탁월한 행정가였지만 정치인으로서는 무능했던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는 백악관에서 불편한 4년을 보냈다. 육중한 체구에 활달하고 양심적인 인물이었던 태프트는 혁신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 사이의 치열한 정쟁에 휘말려 자신의 재임기간에 이룩한 업적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거의 받지 못했다.
1857년에 저명한 판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예일 대학을 졸업했고 신시내티로 돌아와 법률을 공부하고 변호사로 개업했다. 그는 공화당의 임명으로 여러 사법직을 돌았고 본인의 능력과 유권자들 사이에서의 지지도를 무기로 정치권에서 성장했다. 더불어 태프트는 그가 언제나 “관직이 떨어지는 지점에 접시를 잘 받쳐들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농담조로 적기도 했다.
그러나 태프트는 정치권보다는 법조계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34세에 연방 순회판사로 임명되었다. 그는 대법원 판사직을 꿈꾸었지만 그의 아내 헬렌 헤론 태프트가 그에게 다른 야망들을 심어주었다.
그가 백악관에 입성한 경로는 행정관료로서의 경력을 통해서였다. 매킨리 대통령은 1900년에 그를 필리핀 최고행정관으로 파견했다. 필리핀인들에 동정적이었던 태프트는 지역 경제를 개선시켰고 도로와 학교를 건설했으며 적은 수나마 현지인들을 정부에 참여시켰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그를 전쟁부 장관으로 임명했고 1907년이 되자 태프트를 자신의 후계자로 결정했다. 그리고 다음 해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태프트는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태프트는 “내 인생 중 가장 불편했던 넉 달”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선거유세를 혐오했다. 하지만 태프트는 서부에서 지지를 받고 있던 루스벨트의 정책에 대한 자신의 충성을 공약하였고, 그의 형 찰스 태프트는 동부의 공화당 유권자들을 안심시키고 있었다. 이를 두고 민주당 후보로 대선에 세 번째 도전하고 있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은 자신이 서부의 진보적인 태프트와 동부의 보수적인 태프트 두 명의 상대후보와 경쟁하고 있다고 불평하곤 했다.
태프트가 당선되자 진보주의 진영은 기뻐했다. 그들은 “루스벨트가 충분한 건초를 추수했으니 이제 태프트가 창고에 쌓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한편 보수주의 진영 역시 ‘미친 메시아’로 불리던 루스벨트를 제거할 수 있었으므로 선거결과에 만족했다.
태프트는 자신이 전임 대통령과는 차별된 접근방법을 택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루스벨트와는 달리 그는 대통령 권한의 확대에 찬성하지 않았다. 그는 과거 루스벨트 대통령이 “동일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보다 적법한 방식을 선택했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태프트는 예상과 달리 고율의 관세를 현행대로 유지시킨 ‘페인-올드리치 법’을 옹호함으로써 훗날 혁신당을 창당하게 되는 많은 공화당 진보파의 등을 돌리게 했다. 태프트가 의회를 통과시킨 캐나다와의 무역협상안은 관세인하를 주장하는 동부를 만족시킬 수도 있었지만 결국 캐나다가 체결을 거부하였다. 그는 루스벨트의 환경보존 정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비난에 처해 있던 내무부장관을 유임시킴으로써 혁신당 세력과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켰다.
혁신당의 신랄한 공격이 집중되는 속에서 80여 반독점 소송을 제기하고 연방소득세와 상원의원 직접선거제도에 관한 헌법 수정조항을 발의하는 등 태프트 행정부가 이룩한 업적들은 별다른 주의를 끌지 못했다. 그의 재임기간에 우편저축제도가 마련되었고 주간통상위원회가 철도요금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1912년에 공화당이 태프트를 대통령 후보로 재지명하자 루스벨트는 탈당하여 혁신당을 창당하였고 우드로 윌슨의 당선을 도와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태프트는 예일 법대의 교수로 재직하였고 이후에는 하딩 대통령에 의해 미합중국 대법원장에 임명되었다. 그는 1930년 사망 직전까지 대법원장을 지냈다. 태프트 개인에게 있어서 대법원장 임명은 생애 최고의 영예였고 “내가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WhiteHouse.gov에 실린 각 대통령의 전기 출처: “미합중국의 대통령들(The Presidents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프랭크 프라이델, 휴 시드니 공저). Copyright 2006 백악관역사협회(White House Historical Associ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