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관계

Purchased in 1884, the Minister’s (and later Ambassador’s) Residence had been in the possession of the United States Government longer than any other U.S. ambassador’s residence in the world before being rebuilt in 1974. Former American Minister to Korea Horace Allen wrote of it in 1908: “The native architecture was preserved as far as was possible to the intense delight of visitors of an artistic tempera-ment, who never fail to lavish praise over the effect of the beamed and raftered ceilings fully exposed, with neat white paper between the rafters.” (Above) The Minister’s Residence, ca. 1890. (Photo: U.S. National Archives)

미국과 조선은 1882년 조미 수호통상조약을 체결, 외교관계를 수립하였고 미국의 첫 외교 사절이1883년 도착했다. 루셔스 하드우드 푸트는 초대 주한 미국공사로 부임했고 현재 주한미국대사관저의 부지를 매입했다. 1884년 호러스 뉴튼 알렌 박사는 조선 최초의 서구식 의료기관을 설립했다. 이후 이 기관은 세브란스 병원이 된다. 1885년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는 조선에 도착했고, 이후 조선기독교학교 교장이 되었다. 이는 연세대학교의 전신이다. 이후 양국 관계는 1905년 일본이 조선의 외교권을 장악할 때까지 이어졌다. 1910년 일본은 이후 35년간 이어진 조선 식민 통치를 시작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일본의 항복 이후 한반도는 38선을 경계로 둘로 나뉘어, 남한과 북한은 각각 미국과 소련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통일 독립 국가를 향한 최초의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1948년 남쪽의 대한민국과 북쪽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두 개 국가가 수립되었다. 1949년 미국은 대한민국과 수교를 맺었다.

1950년 6월25일, 북한군이 남한을 침략했다. 이에, 미국의 주도로 16개국의 유엔 연합군이 방어에 나섰다. 그 해 말, 북한을 지지하며 중국이 전쟁에 뛰어들었고, 이후 약 2년간 교착 상태가 지속되다가 1953년 7월27일 정전 협정이 체결되었다. 평화 조약은 체결되지 않았다. 전쟁이 멈춘 1953년, 미국과 한국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포괄적 동맹 관계의 근본이 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다.

전후 수 십년 동안 한국에서는 독재 정권 하의 정치적인 혼돈기가 이어졌으나 시민 사회가 활성화되면서 독재 통치에 맞서는 강력한 시위로 이어졌다. 민주화 운동은 1980년대 더욱 격화되었고, 한국 사회는 지금의 활발하고 민주적인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시작했다. 한미관계는 민주주의, 인권, 법치라는 공통의 가치를 토대로 하고 있다.

미국과 한국은 공통의 가치와 이해 관계를 토대로 오랜 우호 협력의 역사를 공유해왔다. 한미 양국은 지역적, 세계적인 위협에 맞서는 동시에, 경제를 강화하기 위해 함께 협력하고 있다. 미국은 외부의 침략에 맞서 한국 방어를 돕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준수하기 위해 한국에 육군, 해군, 공군 및 해병대를 두고 있다. 2013년 한미는 동맹 수립 60주년을 맞았다. 한미연합사령부는 미군과 한국군간의 작전 조율을 담당한다. 미국과 한국은 북한 핵 문제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 발전과 더불어 (한국은 1996년 OECD에 가입했다) 양국간의 무역 투자 관계가 역시 더욱 중요해졌다.

최근 한미 동맹은 심도있고 포괄적인 글로벌 파트너십으로 확대되었고, 지역 및 세계의 리더로서 한국의 역할은 계속해서 증대되고 있다. 한국은 2010년 G-20 정상회의, 2011년 제4차 원조 효과 고위급회의, 2012년 핵안보 정상회의, 2013년 서울 세계사이버스페이스총회 , 2014년 ITU 전권회의를 개최했다. 2017년 한국은 글로벌보건안보구상 선도그룹회의를 주재하였다. 한국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과 세계핵테러방지구상(GICNT) 등 다양한 국제 비핵화 체제의 책임있는 회원국이다. 또한, 한국은 보건 안보, 여성 권한 신장 및 인도주의적 지원을 포함한 개발 노력에 5억 달러 이상 지원을 약속했다.

한국이 글로벌 리더로 성장하면서, 한미 동맹은 우주, 에너지, 보건, 기후 변화 및 사이버 등 미래 지향적 파트너십 기회에 중점을 둔 역동적인 관계로 점차 확대되고 있다. 미국과 한국은 2015년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했고, 상호 관심있는 민수용 원자력 문제를 다루기 위한 한미 원자력 고위급 위원회가 설립되었다. 양국은 또한 2016년 민간 우주 탐사 분야의 협력 증진을 위해 한미 우주협력협정을 체결했고, 2년에 한번씩 장관급 과학기술 공동 위원회 회의를 소집하고 있다. 한국은 불법·비보고·비규제 어업 퇴치에 앞장서는 적극적인 파트너로서, 세계 수산대학 설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미간의 인적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 한국은 미국 대학에서 공부하는 국제 학생의 수를 기준으로 3위안에 드는 나라다.  교육 교류 프로그램으로는 다양한 한국 학생들이 미국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웨스트(WEST) 프로그램을 비롯해 풀브라이트 교류 프로그램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첫 해외 순방지로 2017년 6월 미국을 방문,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했다. 2017년 11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으로는 25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을 국빈 방문했다.

미국의 개발 원조

미국은 현재 한국에 개발 원조를 제공하고 있지 않다. 한국 전쟁 이후 수 년간 미국의 원조를 받았던 한국은 이제 원조를 제공하는 국가로 거듭났다.

한미 경제관계

한국은 지난 수 십년동안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룩했고, 이제 1조 달러 경제국이자 미국의 6대 상품 무역 파트너로 성장했다.

미국 주요 기업들은 오랫동안 한국 투자를 선도해왔고, 한국의 주요 기업들 역시 미국에 상당한 투자를 해왔다. 양국 간에는 제조제품, 농산품, 서비스 및 기술 등의 흐름이 대규모로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한국의 대미 외국인 직접 투자는 2011년 197억 달러에서 2016년 388억 달러로 두 배 가량 상승,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큰 대미 외국인 직접 투자국이 되었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기간 동안 한국 기업들은 향후 4년간 173억 달러 규모의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2012년 3월15일 발효된 한미 FTA는 심도있는 양국 무역 관계를 강조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8년 3월에는 한미 FTA 재협상이 타결되었다.

한국의 국제 기구 가입 현황

한국과 미국은 유엔, G-20, OECD, APEC, 아세안(ASEAN) 지역 포럼, IMF, 세계 은행, WTO 등 다수의 국제 기구의 회원국이다. 한국은 유엔 기후변화협약 관련 국제기구인 녹색기후기금을 유치했다. 한국은 또한 유럽안보협력기구의 협력 파트너이며, 미주기구의 참관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