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F. 케네디는 제35대 대통령(1961~1963년)이며 미국 역사상 최연소로 취임했다. 1963년 11월 22일 취임 후 1,000일을 코 앞에 둔 시점에 존 F. 케네디는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암살되어 최연소로 사망한 대통령으로 남게 되었다.
1963년 11월 22일 취임 후 1,000일을 코 앞에 둔 시점에 존 F. 케네디는 자신의 차량 행렬이 텍사스 주 댈러스를 통과할 때 저격범의 흉탄에 맞아 사망했다. 케네디는 미국 역사상 최연소로 취임한 대통령이자 최연소로 사망한 대통령으로 남게 되었다.
아일랜드계 이민자의 후손이었던 그는 1917년 5월 29일에 매사추세츠 주 브루클린에서 출생했다. 1940년에 하버드대를 졸업한 케네디는 해군에 입대했다. 1943년에 자신의 어뢰정이 일본 구축함의 공격으로 침몰하자 본인 역시 중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친 파도를 헤치고 동승하고 있던 생존자들을 안전하게 구해냈다.
전쟁에서 돌아온 그는 보스턴 지역을 대표하는 민주당 의원으로 당선되었고 1953년에 상원에 진출했다. 같은 해 9월 12일에 재클린 부비어와 결혼했다. 1955년에 등 수술 후 요양하는 동안 <용기 있는 사람들>을 저술해 역사부문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1956년에 그는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거의 지명될 뻔했으며 4년 뒤 후보자 경선 제1차 투표에서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수백만 명의 유권자들이 그와 공화당 후보 리처드 M. 닉슨과의 TV토론을 지켜보았다. 일반투표에서 간발의 차로 당선된 케네디는 역사상 최초의 천주교 신자 대통령이기도 했다.
그는 취임사에서 영원히 기억될 명구를 남겼다.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기 전에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라.” 대통령으로서 집무를 시작한 그는 미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자신의 선거공약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의 경제정책에 따라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장기에 걸친 성장을 시작했다. 암살 당하기 전 그는 오랜 빈곤과 결핍을 뿌리뽑기 위한 전면적인 계획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한 요구에 대응하여 그는 평등권을 옹호하는 적극적인 조치를 취했고 새로운 시민권법의 제정을 촉구했다. 미국에 대한 그의 비전은 문화의 질 향상과 생동하는 사회에서 예술의 중추적 역할로까지 확대되었다.
그는 미국이 과거 인권혁명의 선봉에 섰던 최초의 국가로서 부여받았던 사명을 되살리고자 했다. 그는 진보를 위한 동맹 및 평화봉사단과 같은 단체를 통해 미국의 이상주의를 개도국들로 전파했다. 그러나 공산주의의 도전이라는 엄혹한 현실이 여전히 도사리고 있었다.
취임 직후 케네디는 이미 군사훈련을 마치고 무장을 갖추고 있던 쿠바 망명자들로 하여금 쿠바 본토를 공격하도록 허가했다. 피델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키려던 기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련이 서베를린에 대한 공격을 재개했다. 이에 케네디는 베를린 주둔 병력을 증강하고 미국의 군사력을 강화했다. 여기에는 우주탐사계획도 포함되어 있었다. 미국의 이러한 반응에 직면한 소련은 베를린 장벽 설치 후 중유럽에 대한 압박 수위를 낮추었다.
그 대신 소련은 쿠바에 핵미사일 기지를 설치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1962년 10월에 이러한 사실이 공중정찰에 의해 드러나자 케네디는 쿠바로의 모든 무기 유입을 봉쇄했다. 전 세계가 핵전쟁의 공포에 떨고 있을 때 소련이 한 걸음 물러섰고 미사일 철수에 동의했다. 쿠바 미사일 기지에 대한 미국의 강경한 대응은 소련에게 핵무기를 이용한 협박이 먹혀 들지 않는다는 교훈을 남겨주었음에 틀림없었다.
케네디는 이제 양국이 핵무기 확산을 중지하고 군비경쟁 속도를 늦추어야 할 때라고 역설했고 그 결과 1963년 핵실험금지조약이 체결되었다. 쿠바 위기 이후 수개월 동안 ‘전쟁과 위협의 세계를 지양하고 법치와 자유로운 선택의 세계를 구현’하려는 케네디의 목표는 괄목할 만한 진전을 보였다. 케네디 행정부는 미국민들의 평등권과 세계평화에 대한 새로운 희망의 시작을 목격하게 되었다.
WhiteHouse.gov에 실린 각 대통령의 전기 출처: “미합중국의 대통령들(The Presidents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프랭크 프라이델, 휴 시드니 공저). Copyright 2006 백악관역사협회(White House Historical Associ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