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제4대 대통령(1809~1817년) 제임스 매디슨은 알렉산더 해밀턴, 존 레이와 함께 ‘연방주의자(Federalist)’ 논문집을 집필하여 제헌헌법의 인준에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그 후 수 년이 흐른 뒤 그는 ‘헌법의 아버지’로 추앙받게 되었다.
작고 주름진 제임스 매디슨은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노쇠하고 지쳐 보였다. 워싱턴 어빙은 이런 매디슨을 빗대어 ‘바짝 말라 쪼그라든 사과’를 닮았다고 묘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매디슨의 이러한 외모상의 결점들은 따뜻하고 쾌활했던 그의 매력적인 아내 돌리가 충분히 메워 주었다. 돌리는 당시 워싱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성이었다.
1751년에 태어나 버지니아 주 오렌지 카운티에서 성장한 매디슨은 프린스턴대학(당시에는 뉴저지대학으로 불렸음)을 졸업했다. 역사와 행정학을 전공했으며 법률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1776년 버지니아 주헌법을 기초하는 작업에 참여하는 한편 대륙회의에 참가하였고 버지니아주의회 의장으로도 활동하였다.
필라델피아에서 각 지역 대표들로 구성된 제헌회의가 소집되었을 때 당시 36세이던 매디슨은 종종 토론에서 중요한 부분을 이끌었다.
매디슨은 알렉산더 해밀턴, 존 레이와 함께 ‘연방주의자(Federalist)’ 논문집을 집필하여 제헌헌법의 인준에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그 후 수 년이 흐른 뒤 자신이 ‘헌법의 아버지’로 추앙받게 되자 매디슨은 그 논문들이 “어느 한 개인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머리와 손에서 비롯된 공동작업의 산물”임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의원으로 활동하는 동안에는 권리장전을 기초하고 최초의 예산관련 법률을 제정하는 과정에 일조하였다. 불공정하게 북부의 금융가들에게 부와 권력을 제공한다고 생각되던 해밀턴의 금융정책에 반대했던 매디슨의 지도력으로부터 공화당 혹은 제퍼슨주의 정파가 출현하게 되었다.
영불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제퍼슨 행정부의 국무장관으로 재직 중이던 매디슨은 영국과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미국 선박을 나포하는 행위가 국제법에 위반된다며 항의하였다. 존 랜돌프는 이 항의가 “8백 척의 전함을 향해 얇은 책 한 권을 집어 던지는” 정도의 효과를 거두었다고 비아냥거렸다.
1807년 발효된 금수조치법은 본래 의도와는 달리 호전적인 두 나라의 대외정책에 전혀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으며 오히려 미국경제에 불황을 불러왔다. 그러나 이러한 금수조치에 대한 미국민들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매디슨은 1808년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이 금수조치법은 매디슨이 취임하기 전에 폐기되었다.
매디슨 행정부 출범 첫 해에 미국은 대영 및 대불 교역을 금지시켰다. 그리고 나서 1810년 5월 의회는 양국에 대한 교역 재개를 승인하였다. 다만 대통령으로 하여금 영국과 프랑스 두 국가 중 어느 한쪽이 미국의 중립적 지위를 인정할 경우 다른 한 국가와의 교역을 금지시키도록 하는 단서조항을 포함하였다.
나폴레옹은 이를 준수하는 것처럼 가장했고 1810년 말 매디슨은 영국과의 수교중단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의회에서는 헨리 클레이와 존 캘룬으로 대표되는 주전론을 주장하는 ‘매파’ 강경소장파 의원들이 대통령을 압박하여 무력의 사용을 종용하고 있었다.
영국에 의한 미국선원의 강제 징집과 화물선 나포가 계속되자 매디슨은 주위의 압력에 굴복할 수 밖에 없었다. 1812년 6월 1일 그는 의회에 선전포고를 요청하였다.
하지만 신생국이었던 미국은 전쟁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미국의 군대는 참패를 당했다. 영국군은 워싱턴까지 쳐들어와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에 불을 질렀다.
하지만 해상 및 지상 각지에서 몇몇 승전보가 날아 들었고 그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전과는 앤드류 잭슨 장군이 이끈 뉴올리언스 전투에서의 승리였다. 이 승리로 인해 미국민들은 1812년 영미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민족주의 열기가 치솟았고 반전과 연방으로부터의 탈퇴까지 주장했던 뉴잉글랜드 연방주의 세력은 완전히 부정되었다. 결국 연방주의는 전국당으로서의 지위를 잃게 되었다.
버지니아 주 오렌지 카운티에 위치한 자신의 저택 몽펠리에로 은퇴한 매디슨은 1830년대까지 연방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각 주들의 자치권 주장을 소리 높여 비판하였다. 1836년 그가 서거한 후 개봉된 유고는 “내 가슴 한 가운데 그리고 내 확신 가장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조언은 미국의 연방제도가 항구적으로 소중히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WhiteHouse.gov에 실린 각 대통령의 전기 출처: “미합중국의 대통령들(The Presidents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프랭크 프라이델, 휴 시드니 공저). Copyright 2006 백악관역사협회(White House Historical Associ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