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43대 대통령(2001~2009년) 조지 W. 부시는 2001년 9월 11일 항공기 납치 테러 공격으로 “에이브러햄 링컨 이후 그 어떤 대통령보다 큰 도전”에 직면한 전시 대통령이 됐다.
2001년 9월 11일에 3천 명에 가까운 미국인들이 희생된 세계무역센터와 국방부에 대한 항공기 납치 테러 공격과 무산되기는 했지만 백악관 또는 국회의사당에 대한 공격 시도로 조지 W. 부시는 전시(戰時) 대통령이 됐다. 이 테러 공격으로 부시 대통령이 가졌던 바람과 추진하던 계획 다수가 보류됐으며, 그의 아버지이자 제41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자신의 아들이 “에이브러햄 링컨 이후 그 어떤 대통령보다 큰 도전에 직면했다”고 언명했다.
테러 공격 후 부시 대통령은 내각 부처인 국토안보부를 신설하는 한편, 테러리스트들을 훈련해 해외에 내보내고 자금을 공급하던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조직 탈레반을 응징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파견했다. 미군은 탈레반에 타격을 입히는 데 성공했지만 부시 대통령의 2기 취임 시까지 빈 라덴은 잡히지 않았고 여전히 도피 중이었다. 테러 후 부시 대통령은 또한 미국의 정보 수집 및 분석 체계를 뜯어 고치고 새로운 적에 대항하기 위한 군대 개혁을 지시했다. 동시에 선거 공약 대로 대대적인 세금 인하를 단행했다. 재임 중 그의 행적으로 가장 큰 논란을 불러 일으킨 것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미국에 중대한 위협을 제기한다는 명분 하에 이라크를 침공한 것이었다. 사담 후세인은 잡혔지만 이라크에 전쟁을 일으키고 미국 군인들과 미국에 우호적인 이라크인들이 반군에 의해 목숨을 잃은 일은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는 부시 행정부가 극복해야 할 과제가 됐다. 부시 대통령은 2005년 연두교서에서 이라크에서 자유의 승리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새로운 동맹국을 강화하고 분쟁이 잦은 중동 지역에 희망을 제시하며 후손들의 삶에서 위협을 제거할 것이므로 미국은 이라크 국민들이 온전한 민주 정부를 수립하도록 도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부시 대통령은 부친이 제2차 세계대전 참전 후 예일대에 재학 중이던 시절 코네티컷 주 뉴헤이븐에서 태어났다. 이후 아버지가 석유 탐사업에 몸담게 되면서 그의 가족은 텍사스 주 미들랜드로 이주했다. 부시 대통령은 그곳에서 성장기를 보내며 미들랜드의 공립학교에 다녔고 백악관 시절까지 이어진 교우 관계를 쌓았다. 예일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경영학 학위를 받은 그는 미들랜드로 돌아와 아버지를 따라 석유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미들랜드에서 교사이자 사서였던 로라 웰치를 만나 결혼했다. 이들은 슬하에 제나와 바바라라는 쌍둥이 딸을 두었으며, 이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생활을 하고 있다.
조지 W. 부시가 54세에 미국의 제43대 대통령으로 취임함으로써 미국 역사상 두 번째 부자 대통령이 탄생했다. 1824년에 제6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존 퀸시 애덤스가 제2대 대통령이었던 존 애덤스의 아들이었다. 존 애덤스가 아들을 대통령으로 준비시켰던 데 반해, 제41대 대통령이었던 부시는 자신의 6남매 자녀 중 맏이가 정계 진출에 관심을 갖고 텍사스 주지사를 거쳐 결국 대통령까지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2000년 대통령 선거 운동 초기에 부시는 여론조사에서 경쟁자인 앨 고어 부통령을 두 자리 수 차이로 앞섰다. 그러나 선거일이 가까워지면서 두 후보 간 격차는 점차 좁혀졌고, 고어 후보가 543,895표 차로 유권자 투표에서 이겼지만 선거의 승패는 플로리다 주에서 판가름 나게 됐다. 플로리다 주의 투표 결과를 두고 재검표와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 사태가 이어진 끝에 결국 부시가 271 대 266으로 선거인단 수에서 앞서며 승리를 거머쥐었다. 신임 부시 행정부는 교육의 수월성, 세제 혜택, 종교 단체 및 지역 단체의 자원봉사를 강조하는 ‘온정적 보수주의’를 표방했다.
2004년에 재선에 도전한 부시는 민주당의 존 케리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과 맞붙었다. 두 후보는 좋은 경선 레이스를 펼쳤으나 이라크 전쟁으로 세계가 테러로부터 보다 안전해졌다는 부시의 주장이 국가적인 정치 논쟁에서 승리를 거뒀다. 부시는 득표 수 51% 대 48%로 재선에 성공했다.
취임사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두 번째 임기의 테마를 이렇게 정했다. “이 두 번째 취임식의 자리에서, 우리의 임무를 정의하는 것은 제가 사용하는 단어들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목격한 역사입니다. 반 세기 동안 미국은 머나먼 국경에서 경계를 서며 우리 자신의 자유를 수호했습니다. 공산주의의 붕괴 후 비교적 조용한 시절이 도래했고, 불의 날이 왔습니다. 증오와 분개의 지배를 깨고 폭군들의 허울을 벗기며 참되고 관대한 자들의 희망에 대해 보상할 수 있는 역사의 힘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바로 시험을 거쳤지만 결코 지치지 않은 인간의 자유라는 힘입니다…… 우리는 자유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룰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WhiteHouse.gov에 실린 각 대통령의 전기 출처: “미합중국의 대통령들(The Presidents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프랭크 프라이델, 휴 시드니 공저). Copyright 2006 백악관역사협회(White House Historical Associ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