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빈 쿨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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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제30대 대통령(1923~1929년)으로서 캘빈 쿨리지는 1920년대 시대에 많은 미국인들이 향유하고 있던 물질적 번영의 한가운데에서 전통적인 도덕과 절약의 경제원리를 수호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1923년 8월 3일 새벽 2시 30분에 버몬트에 머물고 있던 캘빈 쿨리지는 자신이 대통령직을 승계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쿨리지는 성경 위에 손을 얹고 공증인이었던 그의 아버지가 등유램프 불빛 아래서 대통령 취임선서를 읽어 내려가는 것을 들었다.

민주당 추종자이던 앨프레드 E. 스미스는 쿨리지를 가리켜 “영웅적인 업적이 아닌 고귀한 인품으로 기억되는” 대통령이라고 묘사했다. “그의 가장 큰 치적은 대통령의 명예가…… 사치와 낭비의 시대에…… 유례없이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 예전의 위엄과 권위를 회복시켰다는 점이다.”

쿨리지는 1872년 7월 4일에 버몬트 주 플리머스에서 마을의 한 가게주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애머스트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하고 매사추세츠 주 노샘프턴에서 법률과 정치에 입문했다. 쿨리지는 노샘프턴 시의원부터 시작하여 공화당 소속으로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되기까지 천천히 그리고 주도면밀하게 정치인으로서의 경력을 쌓아갔다. 이 과정에서 그는 철저한 보수주의 성향을 갖추게 되었다.

대통령으로서 쿨리지는 많은 미국인들이 향유하고 있던 물질적 번영의 한가운데에서 전통적인 도덕과 경제원리를 수호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그는 연방정부의 개입을 통해 경제성장의 속도를 조절하려는 시도나 농업을 비롯한 특정 산업이 처한 어려움을 경감해주려는 조치를 거부했다. 1923년 12월에 의회에 보낸 자신의 첫 번째 연례교서에서 쿨리지는 대외정책에 있어서는 고립주의를, 국내문제에 있어서는 감세와 정부효율 그리고 제한적인 농가지원을 요청했다.

그의 지지도는 빠르게 상승했다. ‘쿨리지 번영’으로 명명된 경제성장 덕에 그는 1924년 일반투표에서 총투표자 수의 54% 이상을 득표했다.

자신의 취임사에서 쿨리지는 미국이 ‘과거에 거의 경험해 보지 못했던 충족의 상태’에 도달했다고 단언하고 현상을 유지하겠노라고 공약했다. 이후 수 년 동안 그는 농가지원법안에 대해 두 번의 거부권을 행사했고 연방정부가 사업주체가 되어 테네시강의 수력으로부터 전력을 생산하여 국민에게 저가에 공급하려던 계획도 백지화했다.

월터 립먼이 1926년에 지적한 바에 따르면, 쿨리지 대통령의 정치인으로서의 천재성은 효과적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재능에 있었다. “이러한 적극적인 비적극성은 여론의 분위기와 일부 집단의 요구에 존경스러울 만큼 영리하게 영합하고 있다. 정부의 간섭을 원하지 않는 기업의 모든 이권을 눈감아주고 있으며…… 이 나라의 정부가 위험스러울 정도까지 복잡해지고 그 상부조직이 비대해졌다고 확신하는 이들의 입맛을 따르고 있다.”

쿨리지는 역사상 가장 부정적이고 냉담한 대통령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대통령이기도 했다. 그는 버나드 바루크에게 왜 자신이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침묵을 지키는 경우가 많은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음, 바루크, 많은 경우 나는 그저 사람들에게 ‘예’ 혹은 ‘아니오’라고 대답할 뿐이지만 그것 조차도 너무 많소. 단지 그 한마디로 인해 20분 이상이 더 소요되기 때문이오.”

그러나 쿨리지는 인디언 전투모나 카우보이 복장을 한 채 촬영에 응하고 백악관에 다양한 계층의 국민들을 초청했던 점에서는 역사상 가장 다정다감한 대통령이었다.

시치미 떼고 툭 던지는 양키 유머와 지독한 과묵함은 백악관에서 전설이 되었다. 그의 아내였던 그레이스 굿휴 쿨리지는 만찬장에서 쿨리지 옆자리에 앉게 되었던 한 젊은 여성의 일화를 예로 들었다. 그 여성은 대통령이 만찬장에서 세 마디 이상 말을 하면 자신이 내기에 이긴다고 대통령에게 말했다. 쿨리지는 얼굴도 돌리지 않은 채 조용히 대답했다. “당신이 졌소.” 그리고 1928년 사우스다코타 주 블랙힐스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던 쿨리지는 그가 발표했던 간결한 성명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성명을 발표했다. “나는 1928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대공황이 미국을 덮쳤을 때 쿨리지는 이미 은퇴한 뒤였다. 1933년 1월에 눈을 감기 전 그는 오랜 친구에게 자신의 흉금을 털어놓았다. “……나는 요즘 시대와는 더 이상 맞지 않는 것 같네.”

WhiteHouse.gov에 실린 각 대통령의 전기 출처: “미합중국의 대통령들(The Presidents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프랭크 프라이델, 휴 시드니 공저). Copyright 2006 백악관역사협회(White House Historical Associ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