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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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대통령의 유고로 민주당 소속으로 주 자치권을 옹호하고 잭슨주의를 신봉하던 보수적인 남부인이었던 앤드류 존슨이 미국의 제17대 대통령(1865-1869년)이 되었다.

링컨 대통령의 유고로 대통령직은 민주당 소속으로 주 자치권을 옹호하고 잭슨주의를 신봉하던 보수적인 남부인이었던 앤드류 존슨에게 넘어갔다. 비록 자신은 강직하고 존경 받을만한 정치인이었지만 험난한 정국으로 인해 존슨은 불행한 재임기간을 보낸 대통령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의회에는 공화당 과격파 의원들이 포진하고 있었고 이들은 일사불란한 조직과 가차없는 전술로 당시 정국을 주도하고 있었다. 존슨은 이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1808년 캐롤라이나 주 롤리에서 출생한 존슨은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려서 재단사의 도제로 들어갔지만 곧 도망쳤다. 테네시 주 그린빌에 자신의 양복점을 연 존슨은 엘리자 맥커들과 결혼했고 지역 지식인들과의 토론에 참가했다.

정치에 입문한 존슨은 탁월한 대중연설가의 면모를 과시하며 보통 사람의 권익을 옹호하고 대농장주 계급을 맹렬히 비난했다. 1840년대와 1850년대에 하원과 상원에서 재임하는 동안 존슨은 ‘자작농장 법안’을 지지하여 빈곤층에게 무상으로 토지를 불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방탈퇴의 위기 속에서 자신의 출신주인 테네시가 탈퇴를 선언했지만 존슨은 상원을 떠나지 않았다. 이 일로 그는 북부에서는 영웅이 되었지만 대부분의 남부인들에게 배신자로 비쳐졌다. 1862년에 링컨 대통령은 존슨을 테네시 군정주지사로 임명했고 그는 테네시를 재건의 시험대로 삼았다. 1864년에 국가연방당의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문을 열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공화당은 민주당원이면서 남부인이었던 존슨을 부통령후보로 지명했다.

링컨 사망 후 대통령직을 승계한 존슨은 의회가 개회하기 전인 1865년에 구(舊) 남부동맹주의 재통합 작업을 추진했다. 그는 ‘충성선서’를 받아들인 남부의 모든 전쟁 관련자들을 사면했지만 전쟁에 책임이 있는 지도부나 부유층에 대해서도 대통령 특별사면을 통해서만 구제가 가능하도록 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1865년 12월에 의회가 시작될 무렵에는 대다수 남부 주들이 재건되었고 노예제도 역시 점차 철폐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자유의 몸이 된 흑인들을 규제하기 위한 ‘흑인규제법’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의회의 공화당 과격파 의원들은 존슨의 정책들에 제동을 걸기 위해 활발히 움직였다. 이들은 남북전쟁 이전의 남부 지도자들이 여전히 건재해 있고 흑인들의 자유를 구속하는 여러 규제들이 버젓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실망한 북부인들의 지원을 얻는데 성공했다.

공화당 과격파가 취한 첫 번째 조치는 구 남부동맹 출신 의원들의 상하원 진출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다음 단계로 이들은 해방노예의 처리와 관련한 법안을 통과했지만 존슨은 거부권을 행사하여 이 법안을 의회로 돌려보냈다. 이에 과격파는 거부권을 번복할 수 있는 투표수를 얻어내며 법안의 재통과를 관철시켰다. 이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중요법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을 의회에서 무효화시킨 예로 기록되었다. 의회는 ‘1866년 시민권법’을 통과시켜 흑인에게 미국시민권을 부여하고 차별을 금지했다.

몇 달 후 의회는 헌법 수정조항 제14조를 각 주에 제출했다. 이 수정조항은 어떠한 주도 “적법한 절차를 따르지 않고 개인의 목숨, 자유, 재산을 빼앗을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테네시를 제외한 모든 구 남부동맹주들은 이 수정조항의 비준을 거부했다. 남부에서는 두 차례에 걸쳐 유혈인종폭동이 일어났다. 중서부 지방에서 연설 중이던 존슨은 적개심이 팽배한 군중과 맞닥뜨려야 했다. 같은 해 가을 공화당 과격파는 상하원선거에서 압도적인 대승을 거두었다.

1867년 3월에 과격파는 남부 주들을 군정 하에 두는 것을 요지로 한 자신들의 재건안을 마련했다. 이들은 하원에서 대통령 권한에 제한을 가하는 법안들을 통과시켰으며 존슨이 에드윈 M. 스탠튼 전쟁장관을 해임하자 그가 이 법률들 중 하나인 ‘공무원 임기법’을 위반했다는 빌미를 잡아 11개항으로 구성된 대통령 탄핵안을 상정했다. 1868년 봄 상원에서 이 탄핵안에 대한 심의가 진행되었고 존슨은 한 표 차이로 대통령직을 지킬 수 있었다.

1875년에 존슨은 테네시 주 상원의원으로 정계에 복귀했지만 몇 달 뒤 세상을 떠났다.

WhiteHouse.gov에 실린 각 대통령의 전기 출처: “미합중국의 대통령들(The Presidents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프랭크 프라이델, 휴 시드니 공저). Copyright 2006 백악관역사협회(White House Historical Associ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