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잭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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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잭슨은 1829년부터 1837년까지 미국의 제7대 대통령으로 재임하였고 보통 사람이 직접 뽑은 대표로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앤드류 잭슨은 그의 어떤 전임 대통령보다 국민 투표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으로 볼 수 있고, 그는 대통령으로서 보통 사람이 직접 뽑은 대표로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1767년 캐롤라이나 벽지의 한 정착촌에서 태어난 잭슨은 어려서 제대로 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십대 후반에 약 2년에 걸쳐 법률을 공부했고 테네시에서 촉망 받는 젊은 법조인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명예를 매우 중요시 했던 잭슨은 종종 싸움에 말려들곤 했으며 자신의 아내 레이첼을 부당하게 비방한 남자와 결투를 벌여 목숨을 빼앗은 일도 있었다.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둔 잭슨은 노예를 사들이고 내시빌 근처에 허미티지라는 이름의 저택을 세웠다. 그는 테네시 출신으로는 최초로 하원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상원의원으로도 잠시 활동한 적이 있다. 1812년 영미전쟁에 소장 계급으로 참전한 잭슨은 뉴올리언스에서 영국군을 격퇴하며 일약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1824년 잭슨 주위에는 일부 주의 정파들이 몰려들었고, 1828년에는 ‘올드 히커리(잭슨의 별명)’ 지지 정파가 충분히 커져 다수의 주 선거에서 승리했고, 워싱턴에 있는 연방 행정부를 장악했다.

대통령 취임 후 첫 번째 연례교서에서 잭슨은 선거인단 제도를 폐지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는 또한 기존의 연방 공직 임명제도를 민주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였다. 당시 정부기구 내 관직은 대부분 집권세력의 임명권에 의해 채워지고 있었다. 한 뉴욕 상원의원은 “승자에게 공직임명권이 돌아가는 것”일 뿐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이 문제에 대해 잭슨은 보다 온건한 견해를 가졌다. 평생정년을 보장 받고 있었던 공직자들을 겨냥하여, 정부 관직에서 처리하는 업무가 “아주 평이하고 단순하므로” 일정 자격을 갖춘 인원들이 순환하며 보직을 맡는 것이 합당하다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정치권이 친 잭슨과 반 잭슨 세력으로 양분되자 기존의 공화당으로부터 두 정당이 갈라져 나왔다. 하나는 잭슨을 지지하는 민주공화당 혹은 민주당이었고 다른 하나는 잭슨에 반대하는 국가공화당 혹은 휘그당이었다.

헨리 클레이와 다니엘 웹스터를 필두로 한 휘그당 지도부는 자신들을 가리켜 잭슨으로부터 시민권을 지켜내는 수호자라고 불렀다. 잭슨에 적대적이던 만화가들은 잭슨을 앤드류 1세 왕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이처럼 양당 간의 공방이 일어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잭슨이 전임 대통령들과는 달리 정책입안 기능을 의회의 손에만 맡겨두지 않았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잭슨은 정국운영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대통령에게 주어진 거부권과 자신의 당 지도력을 최대한 활용했다.

잭슨 재임기간 중 가장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문제는 미합중국 제2의 중앙은행 설립을 둘러싼 정당간 갈등이었다. 이 은행은 표면적으로는 민간기업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부를 배경으로 독점적인 지위를 남용하고 있었다. 잭슨이 반대 의사를 보이자 은행 측에서도 총력을 기울여 반격을 가했다.

은행 측 변호인으로 나선 클레이와 웹스터는 의회에서 은행 설립 인가를 얻어내기 위해 투쟁을 벌였다. 잭슨은 은행 설립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마틴 반 뷰렌에게 “그 은행이 나를 죽이려 하지만 내가 그 은행을 죽일 것”이라고 하면서 그 은행이 불공정한 경제적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러한 잭슨의 견해는 국민들의 지지를 얻었다. 1832년 대선에서 그는 상대 클레이 후보 득표수의 거의 다섯 배에 가까운 전체 투표자수의 56퍼센트 이상을 독식하며 압승을 거두었다.

또한 잭슨은 고율의 보호관세 철폐를 요구하는 존 캘훈의 도전을 정면으로 받아들였다.

사우스캐롤라이나가 관세 무효화를 약속하자 잭슨은 찰스턴으로 파병을 명령하는 한편 캘룬을 교수형에 처하겠다는 경고를 보내기에 이르렀다. 양측 간의 충돌이 임박했을 때 클레이가 중재 역으로 나서 타협안을 도출해냈다. 관세율은 인하되었으며 사우스캐롤라이나는 보호관세 무효화 요구를 철회하였다

1832년 1월 잭슨이 백악관에서 친구들과 식사를 하고 있을 때 누군가 그의 귀에 대고 상원이 마틴 반 뷰렌에 대한 주영공사 임명안을 거부했다는 소식을 속삭였다. 그러자 잭슨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신의 이름으로! 그 자들을 박살 낼 것이다.”라고 외쳤다. 과연 잭슨은 자신의 말을 실천에 옮겼다. 그가 총애했던 반 뷰렌은 부통령의 자리에 올랐고 ‘올드 히커리’가 허미티지로 은거한 후 결국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잭슨은 허미티지에서 1845년 6월에 세상을 떠났다.

WhiteHouse.gov에 실린 각 대통령의 전기 출처: “미합중국의 대통령들(The Presidents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프랭크 프라이델, 휴 시드니 공저). Copyright 2006 백악관역사협회(White House Historical Associ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