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국경, 새로운 영토

Treaty of Guadalupe Hidalgo
Treaty of Guadalupe Hidalgo

1848년 2월 2일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 체결


“미합중국과 멕시코 공화국 간에, 또 그 각 주, 준주, 도시, 읍 및 국민들 간에, 장소나 사람의 예외 없이 확고하고 보편적인 평화를 약속한다.” – 1848년,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

미국 서부의 상당 부분이 멕시코의 영토였던 것을 알고 있나요? 1848년 2월 2일, 미국과 멕시코의 관리들이 멕시코 시티에서 만나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조약을 통해 2년 가까이 벌어졌던 멕시코 전쟁이 끝나게 되었고, 미국 서부가 과거에 멕시코 영토였던 525,000 평방 마일을 포함하게 되면서 태평양에까지 닿게 되었습니다. 이 때 얻어진 영토는 현재의 애리조나,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서부, 네바다, 뉴 멕시코, 텍사스, 유타를 포함하는 방대한 땅이었습니다. 1853년의 개즈덴 매입조약과 더불어, 이 조약이 체결됨으로써 미국의 48개 주 확장이 완료되었습니다. 이 조약의 체결로 이어진 사건이 무엇인지 아나요?

멕시코 전쟁은 텍사스를 미국의 주로 추가하는 문제를 놓고 시작되었습니다. 멕시코와 미국이 서로 뉘에스(Nueces) 강과 리오 그란데(Rio Grande) 강 사이의 지역을 자기 영토라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1846년 1월, 제임스 포크 대통령은 재커리 테일러 장군에게 이 분쟁지역으로 군대를 이끌고 진입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멕시코 군이 테일러가 이끄는 군대를 공격하자, 의회는 1846년 5월 13일에 멕시코에 대한 전쟁선언을 승인했습니다. 1847년 9월 14일에 윈필드 스콧 장군이 멕시코 시티를 점령하자 전투는 잦아들었습니다.

멕시코 전쟁에 참전한 병사들은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었습니다. 이들은 강렬한 더위, 먼지, 벌레, 부족한 식량, 낮은 급여, 질병 등으로 고통을 받았는데, 아마 총탄에 맞아 전사한 병사 보다 이런 원인으로 죽은 병사가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멕시코 병사들 역시 장교들로부터 좋지 않은 대접을 받았는데, 이는 장교들이 부유한 계급 출신인 반면 사병들은 대부분 농부였기 때문입니다.

반면, 병사들이 ‘거칠고 준비된 장군’(“Old Rough and Ready”)이라 불렀던 미국의 재커리 테일러 장군은 병사들을 많이 배려했습니다. 테일러 장군은 군복 위에 밀집 모자를 자주 써서 장군이라기 보다는 늙은 농부 같아 보였습니다. 윈필드 스콧 장군은 말끔하고 깨끗한 군복과 엄격한 규율 때문에 ‘야단법석 깃털 장군’(“Old Fuss and Feathers”)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이 두 장군은 모두 미국의 승리를 이끌어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