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살지 못하느니 죽는게…

1841년 3월 9일
아미스타드 반란 생존자 석방


자유를 잃느니 죽음을 택할 것인가? 150년도 더 전에 서 아프리카의 시에라 리온에서 노예로 끌려가던 사람들은 이 질문에 ‘예’라고 대답했습니다. 조국에서 포르투갈의 노예 상인들에게 납치 당해 노예 범선인 아미스타드 호(Amistad)에 실린 아프리카 인 53명은 조셉 신케이(Joseph Cinque)의 주도로 선원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신케이는 멘드(Mende) 부족의 일원이었습니다. 신케이는 아프리카 서부 해안의 시에라 리온의 멘드 족의 땅에 살았고, 추장의 아들이었습니다.

1841년 3월 9일, 미국 대법원은 반란에서 살아남은 35명의 아프리카 인을 석방하고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신케이의 지휘 하에, 반란자들은 아미스타드 호의 항해사의 목숨을 살려 주었고 배를 아프리카로 되돌리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이 항해사는 뱃머리를 북쪽으로 돌렸고, 롱 아일랜드 해안에서 표류하다가 미국 해군에 발견되어 코네티컷의 뉴 런던으로 예인되어 왔습니다.

친 노예제도 성향의 유권자의 정칙적 지지를 받고자 했던 마틴 밴 뷰렌(Martin Van Buren) 대통령은 신케이와 반란자들이 반란죄로 처벌 받기를 바랐지만, 재판관은 이를 받아 들이지 않고 이 아프리카 인들을 모국으로 돌려 보내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신케이 반란자들과 밴 뷰렌 대통령의 싸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에 상고된 재판에서 전직 대통령 존 퀸시 애덤즈(John Quincy Adams)는 아미스타드 호의 아프리카 인들은 불법적, 강제적으로 노예가 되었고, ‘인도적인 기독교 국가에서 마땅히 제공되어야 할 모든 호의와 주선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은 이에 동의했고, 아미스타드 사건에서 애덤즈가 승소한 것은 노예제도 폐지 운동에서 중요한 성공사례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소재로 만든 영화 ‘아미스타드’를 본 적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