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티 나이너 (Forty – Niner)가 쓴 편지

California_Cli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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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9년 11월 25일
새크라멘토 개척자의 삶


골드 러시 때 캘리포니아로 가는 느낌이 어땠을 지 궁금해 한 적이 있나요? 1849년 서터스 크리크(Sutter’s Creek)에서 금이 발견되었다는 발표가 나온 후, 4만 명의 사람들이 뱃길로 캘리포니아로 갔습니다. 육로를 통해 캘리포니아로 간 사람들로 몇 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을 1949년에 캘리포니아로 갔다고 해서 ‘포티 나이너’(forty-niners)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금을 발견해 부자가 되겠다는 꿈에 이끌려 캘리포니아로 갔습니다. 북부의 상인인 프랭클린 벅(Franklin A. Buck)도 일확천금을 꿈꾸며 서부로 갔던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갓 스무 살이었던 벅은 뉴욕의 일을 그만두고 1849년 1월 캘리포니아로 가는 배에 올랐습니다. 1849년 11월 25일, 벅은 누나 메리에게 신흥 도시인 새크라멘토의 경험을 적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벅은 그곳에서 생필품 가게를 열었고, 장사는 급속히 성장하는 도시와 더불어 나날이 번성했습니다.

젊은 포티 나이너인 벅은 고향이 그리웠지만 누나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여기에 왔다가 향수병에 걸려 금방 돌아간 사람들처럼, 빈손으로 돌아가려고 2만 마일을 달려오지는 않았어.” 젊은 벅은 메리에게 장사가 잘 된 이야기도 전했습니다. “지지난 주에 말이야, 우리 조그만 가게에서 물건을 자그마치 1,500 달러어치나 팔았거든. 모두 하루 만에 현찰로 판 거야. 조셉은 꿈도 못 꿀 일이지… 내가 샌 프란시스코에서 20파운드 들이 한 자루에 18 달러에 산 밀가루는 여기서 44 달러에 파는데, 벌써 물건이 없어.” 1849년 캘리포니아로 금을 찾아 나섰던 사람들 중에는 빈 손으로 고향으로 돌아간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광부들에게 생필품을 공급했던 벅과 같은 상인들은 대개 서부에서도 장사를 잘 했습니다.

벅은 메리에게 발전하는 새크라멘토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천막 외에도 제대로 뼈대를 갖춘 건물이 800채가 넘어.” 벅은 캘리포니아는 날씨도 좋다고 썼습니다. “오늘은 일요일인데, 누나 있는 데는 아마 음산한 11월 날씨겠지. 여기는 날씨가 너무 좋고, 춥지도 않아서 불을 피울 필요가 없어.” 캘리포니아가 좋다는 얘기를 늘어 놓으면서도 벅은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감추지는 못했습니다. “추수감사절에는 집에 가면 좋겠다. 이 편지를 받을 때쯤이면 추수감사절쯤 되겠네. (턴오버 파이 하나 구워줘!) 추수감사절 어떻게 보냈는지 다 써서 보내줘. 온 가족이 모여 추수감사절을 함께 보낼 날을 손꼽아 기다릴게.” 집과 가족이 몹시 그리웠던 적이 있나요? 만약 여러분이 포티 나이너라면, 프랭클린 벅과 비슷한 심정이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