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다크 호스

James K. Polk
James K. Polk

1844년 11월 5일
제임스 포크, 미국 11대 대통령 당선


제임스 포크가 민주장의 대통령 후보 직을 수락했을 때, 그는 잘 알려진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야당이었던 휘그 당(Whig Party)은 지명도가 낮은 포크의 약점을 비꼬며, ‘제임스 포크가 누구야?’라며 폄하했습니다. 그러나, 발군의 연설가인 포크는 정력적으로 선거운동을 펼쳐 1844년 11월 5일 마침내 미국의 11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모든 사람을 놀라게 했습니다. 포크가 11대 대통령 선거에서 휘그 당의 헨리 클레이(Henry Clay)를 이길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포크는 ‘다크 호스’(dark horse)라 불렀습니다.

포크는 다른 후보들이 회피한 서부로의 확장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기반으로 선거운동을 펼쳐 근소한 표차로 승리했습니다. 재선에는 뜻이 없었던 포크는, 대통령에 취임한 후 선거공약을 지키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대통령으로 재임한 4년 동안 포크는 텍사스 주의 편입과, 독립적인 재정체계의 재구축과, 멕시코로부터의 영토 취득 등을 이루어냈습니다. 멕시코에서 취득한 땅은 오늘날의 캘리포니아, 뉴 멕시코, 애리조나, 유타, 그리고 콜로라도와 와이오밍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땅을 취득한 직후인 1948년에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중요한 정치적 업적은 포크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열정과 활력이 넘치는 모습으로 대통령이 된 포크는 53세에 백악관을 떠날 때에는 몹시 지친 모습이었습니다. 그 후 채 넉 달도 못 되어, 포크는 한 때 주지사를 지낸 바 있는 테네시의 내쉬빌에 마련한 새 집 ‘포크 플레이스’(Polk Place)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포크의 부인인 새라 차일드리스 포크는 그 집에서 42년을 더 살며, 많은 손님들을 맞았습니다. 포크 여사는 남북전쟁 중에는 연방 지도자와 남부동맹 지도자를 가리지 않고 환영했습니다. ‘포크 플레이스’는 일종의 성지로서, 피비린내 나는 내쉬빌 전투 중에도 중립의 땅으로 존중을 받았습니다. 포크 부부는 크게 확장된 미국에 중요한 유산을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