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탄을 피한 장군

The Battle of Buena Vista
The Battle of Buena Vista

1847년 2월 23일
부에나 비스타 전투


1847년 2월 23일, 14,000 명의 멕시코 군대가 재커리 테일러(Zachary Taylor) 장군이 이끄는 소규모 군대를 향해 돌진해 왔습니다. 테일러 장군이 이끄는 5,000 명의 병사들은 엄청난 집중포화를 퍼부어 안토니오 로페즈 데 산타 안나(Antonio Lopez de Santa Anna) 장군이 이끄는 멕시코 군대를 격퇴했습니다. 밤이 되자 멕시코 군대는 철수했지만, 그렇다고 미-멕시코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부에나 비스타 전투는 멕시코 북부의 몬터레이(Monterrey) 근처에서 벌어졌습니다. 미?멕시코 전쟁은 독립이나 정치적 목적을 위한 것도 아니었고, 오로지 더 많은 땅을 확보하기 위한 전쟁이었습니다. 테일러 장군은 그러한 전쟁을 치르기에 적합한 인물이었습니다.

오하이오에서 구둣방을 하고 있던 새뮤얼 맥닐(Samuel McNeil)은 전쟁터에서 보여준 테일러 장군의 용감함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이번 전투에서 일어난 사건 하나를 꼭 언급해야겠다. 이 사건은 전쟁터에서 테일러 장군의 탁월한 침착성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테일러 장군은 작은 포탄이 사타구니를 향해 정통으로 날아 오는 것을 보았다. ‘올드 위트니’가 포탄을 피하도록 박차를 가하는 대신에, 짧은 발판을 그대로 딛고 침착하게 일어서서 포탄이 사타구니와 말 안장 사이를 통과하게 했다.”

테일러 장군은 부에나 비스타 전투 후에 산타 안나 장군을 추격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몇 달 후 미국 육군의 윈필스 스콧(Winfield Scott) 장군이 산타 안나 장군을 따라 잡았습니다.

스콧 장군은 해상을 통해 멕시코를 침공했습니다. 스콧 장군은 세로 고르도(Cerro Gordo) 전투에서 멕시코 군을 격퇴했으나, 산타 안나 장군은 또 한 번 생포를 피했습니다. 스콧 장군은 강력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계속 진격하여 9월에 멕시코의 수도를 점령했습니다. 1848년 2월 2일,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the Treaty of Guadalupe Hidalgo)이 멕시코 시티에서 체결되면서 전쟁이 막을 내렸습니다. 5년 후 개즈덴 매입(Gadsden Purchase)을 통해 미국과 멕시코 간에 현재의 국경이 설정되었습니다.

테일러가 이 전쟁에서 일군 승리는 1848년에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스콧도 1852년에 대통령에 출마했으나, 미?멕시코 전쟁의 또 다른 참전 용사인 프랭클린 피어스(Franklin Pierce)에게 패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