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정착지

A Settlement with Unsettling Challenges
A Settlement with Unsettling Challenges

1607년 5월 14일
제임스타운 건설


영국의 버지니아 회사(Virginia Company)는 ‘Virgin Queen’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을 기리는 뜻으로 후일 ‘버지니아’로 이름 붙인 신대륙의 신비로운 땅으로 가서 식민지를 건설하겠다는 대담한 제안을 했습니다. 이에 따라 모두 120명의 이주민이 대서양을 건너는 모험에 동참했습니다. 이들은 1607년 5월 14일에 버지니아에서 제임스타운을 세웠고, 이곳은 영국이 북아메리카에서 최초로 세운 식민지였습니다. 이주민들의 의지는 강했지만, 이들은 어떤 어려움을 겪게 될 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제임스타운에 정착한 사람 중 절반은 기술공, 수공업자, 군인, 육체 노동자 등이었는데, 그 중에는 재봉사와 이발사가 각각 한 명, 그리고 의사가 두 명 끼어 있었습니다. 나머지 절반은 소위 ‘신사’라 불리던 사람들로 재력이 있어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이들은 신대륙에서 살아 남기 위해 필요한 거친 일을 과소평가했던 것 같습니다. 불과 8개월 후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120명 중 38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생존자 중에는 모험가이자 탐험가인 존 스미스 선장(Captain John Smith)이 끼어 있었습니다. 스미스 선장은 영국에서 새로운 이주민들이 들어와 제임스타운의 인구가 500명으로 불어난 첫 2년 동안 탁월한 지도력으로 어려움 속에서도 정착촌이 발전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1609년에 스미스 선장이 떠나자 더 큰 어려움이 찾아왔습니다.

날씨는 나빴고 생필품도 부족했습니다. 스미스 선장이 떠난 후 닥친 추운 겨울을 지나는 동안 정착민 500명 중 60명 만 살아 남았습니다. 제임스타운에는 훌륭한 항구가 있었지만, 습지가 많아 모기가 들끓었고, 깨끗한 물도 부족했습니다. 정착민들은 질병과, 기아뿐 아니라 영국 이주민들이 차지한 땅의 본래 주인인 알곤킨 부족(Algonquian Indians)과도 싸워야 했습니다. 알곤킨 부족의 포와탄(Powhatan) 추장은 처음에는 이주민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허락했으나, 이주민들이 끊임 없이 들어오자 부족의 땅에서 이주민들이 계속 땅을 넓혀가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볼 수가 없었습니다. 알곤킨 부족의 일부는 들에서 일하고 있는 정착민들을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평화와 번영의 시기도 있었습니다. 포와탄 추장의 딸인 포카혼타스(Pocahontas)가 제임스타운의 연초 재배업자인 존 롤프(John Rolfe)와 결혼하면서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기다리던 생필품과 새 지도자도 영국에서 도착했습니다.

그러던 1619년에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네덜란드의 노예 무역상이 식량을 받는 대신 사로잡은 아프리카 인들을 내주었던 것이었습니다. 이 아프리카 인들은 계약에 따른 하인이 되어, 노동을 하는 대신 잘 곳과 장래의 자유를 보장 받았습니다. 이들은 정착촌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중에 속합니다. 1680년까지만 하더라도 흑인노예는 보편적인 현상이 아니었습니다. 땅과 생존을 위한 투쟁이 계속되고 있었고, 제임스타운은 그러한 투쟁의 초입에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 외에 북아메리카 초기 정착민에 대해 더 알고 있는 것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