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에서 온 폭풍 : 칼룬(Callhoun)

G.P.A._Healy's_portrait_of_John_C._Calhoun,_Charleston_City_Hall
G.P.A._Healy's_portrait_of_John_C._Calhoun,_Charleston_City_Hall

1782년 3월 18일
존 칼룬 탕생


여러분이 나이가 들어 과거를 돌아보게 되면, 살아오면서 경험한 중요한 일과 직업을 떠올릴 수 있게 되겠지요?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애비빌(Abbeville) 근처에서 1782년 3월 18일 태어난 존 칼룬은 여러 중요한 공직을 거친 삶을 되돌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칼룬은 하원의원, 상원의원, 전쟁장관, 국무장관, 부통령 등 다양한 공직을 두루 거쳤습니다. 칼룬은 또 불 같은 성격으로도 유명한 사람입니다. 칼룬이 자신의 신념을 옹호하다 화를 내는 일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습니다.

칼룬은 남부가 노예제도를 계속 유지할 권리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칼룬은 평생 동안 노예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싸웠고,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상원의원으로서 정치경력의 끝을 앞둔 노년에 이르러서도 싸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칼룬은 미국이 서부로 확장하면서 노예제도를 제한한다는 이유로 1850년의 타협안에 반대했습니다. 칼룬은 타협안에 반대하는 연설을 의회에서 하기 위해 42 페이지에 이르는 연설문을 직접 썼습니다. 피골이 상접하여 죽어가는 모습이 역력한 68세의 칼룬은 여전히 신념을 위해 싸울 준비를 하고 의사당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병이 깊어 연설을 직접 할 수 없었던 칼룬은 버지나아의 제임스 머레이 메이슨(James Murray Mason) 상원의원에게 연설문을 대신 읽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칼룬의 연설이 늘 그렇듯, 이 연설문은 타협안을 북부의 침략행위라고 비난하고 타협안에 대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습니다. 칼룬은 북부와 남부가 평화롭게 두 나라로 갈라서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의회는 타협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칼룬은 그 직후(1985년)에 타계하여 신념을 위해 싸웠던 오랜 정치생활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존 칼룬과 같은 불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을 알고 있나요? 여러분도 강한 신념이 있으면 칼룬처럼 싸울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