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에서 시인으로

From Slavery to Poetry
From Slavery to Poetry

1773년 9월 1일
책을 낸 최초의 아프리카 계 미국인
필리스 위들리


필리스 위틀리는 7 ? 8살쯤에 고향인 서아프리카에서 노예 사냥꾼에 붙잡혔습니다. 위틀리는 노예선에 실려 1761년에 보스턴으로 왔습니다. 위틀리가 후일 세상에 내보일 재능을 알 리 없는, 성공한 재봉사인 존 위틀리와 아내인 수재너는 배에서 직접 이 어린 여자아이를 사서 필리스 위틀리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위틀리는 자라서 시인이 되었습니다. 위틀리의 시집 「종교와 도덕의 다양한 주제에 관한 시집」은 1773년 9월 1일에 발간되었습니다. 대부분의 노예가 글을 배우지 못하도록 되어 있던 때에 위틀리는 어떻게 책을 낸 최초의 아프리카 계 미국인이 될 수 있었을까요?

어느 날, 위틀리 부부는 필리스가 벽에 분필로 글을 쓰는 것을 보았습니다. 위틀리 부부는 필리스에게 벌을 주지 않고 오히려 글을 배우도록 북돋아 주었습니다. 위틀리 부부의 딸이 필리스에게 읽기와 쓰기를 가르쳤습니다. 위틀리는 영문학과 라틴어와 성경도 공부했지만, 위틀리가 가장 잘 하는 것은 역시 시 쓰기였습니다. 위틀리의 첫 시가 1767년 뉴포트 머큐리(Newport Mercury) 신문에 실렸습니다.

6년 후, 필리스 위틀리는 위틀리 가족의 시중을 들기 위해 런던으로 갔으며, 필리스는 런던에서 헌팅던 백작 부인인 셀리나 헤이스팅(Selina Hasting)을 만나고자 했습니다. 백작 부인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백작 부인은 1773년에 필리스가 시집을 내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필리스가 미국으로 돌아오자 또 하나의 놀라운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위틀리는 자유를 얻게 됩니다. 자유인이 된 위틀리는 예전에 만난 적이 있는 조지 워싱턴 대통령에게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편지와 시를 보냈습니다. 워싱턴은 감사를 표하고 ‘훌륭한 시적 재능’을 칭찬하는 답장을 보내 왔습니다.

위틀리는 1778년에 자유 흑인인 존 피터스(John Peters)와 결혼했고, 세 편의 시를 더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위틀리의 남편은 사업에서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위틀리는 나중에 하인이 되었고, 가난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난하기는 했지만 자유인으로 세상을 떠났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