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을 물리친 지략

Vincennes_1779
Vincennes_1779

1779년 2월 25일
헨리 해밀턴 부총독의 항복


미국 독립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수 백 명의 식민지 인들과 그 가족이 애팔래치아 산맥을 넘어 식민지의 보호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 정착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자, 이 정착민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뿐 아니라 영국 군의 공격까지 받을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조지 로저스 클라크 중령은 영국의 헨리 해밀턴 부총독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매수하여 정착민들을 공격하게끔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클라크는 버지니아 주지사인 패트릭 헨리의 지원을 받아, 접경지역 주민들 중 자원자를 규합하여 미시시피 강을 따라 설치된 영국의 전초기지를 공격하기 위해 나섰습니다. 이들은 해밀턴도 생포할 작정이었습니다.

클라크는 해밀턴이 인디애나의 벵센느(Vincennes)에 위치한 세크빌 요새(Fort Sackville)의 방비를 강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요새를 함락시키기 위해서는 신속하게 공격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부하들의 탁월한 사격실력에 기대를 걸 수도 있었지만, 녹비가죽 옷을 입은 접경지역 주민 200명으로 요새를 함락시키기 위해서는 지략이 필요했습니다.

클라크는 1779년 2월 23일에 벵센느에 도착했습니다. 클라크는 부하들에게 요새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뒤에서 중대의 모든 깃발을 들고 앞뒤로 행진을 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를 본 해밀턴은 200명이 아니라 600명으로 구성된 중대가 진격해 왔다고 착각하고, 수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 항복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해밀턴은 항복조건을 논의하기 위해 2월 24일에 근처 교회에서 만날 것을 요청했습니다. 2월 25일 아침, 해밀턴은 결국 항복을 했습니다. 해밀턴은 윌리엄스버그(Williamsburg)에 투옥되었고, 영국은 이 요새를 다시는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요새 위로 미국 깃발이 걸리고, 이를 축하하는 축포가 발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