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적 동맹

Signing_of_the_Treaty_of_Amity_and_Commerce_and_of_Alliance_between_France_and_the_United_States_by_Charles_E._Mi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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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8년 2월 6일
미국 식민지와 동맹을 맺은 프랑스


778년 2월 6일, 벤저민 프랭클린은 프랑스에서 우호통상조약(Treaty of Amity and Commerce)과 동맹조약(Treaty of Alliance)을 체결했습니다. 우호통상조약은 미국을 독립국가로 인정하고 프랑스와 미국 간의 무역을 촉진하기 위한 조약이었습니다. 동맹조약은 미국의 독립전쟁에서 신생 미합중국과 프랑스가 영국에 대항하는 동맹을 체결하는 조약이었습니다. 프랑스는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쟁취할 때까지 미국의 군사적 노력을 지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조약은 미국이 완전히 독립한 후에는 프랑스와 미국이 평화조약을 공동으로 협상하기로 하고 있습니다. 프랑스가 미국의 독립전쟁 승리를 위해 미국을 지원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프랑스는 프랑스-인디언 전쟁으로 식민지 영토를 잃은 일 때문에 영국과 불편한 관계에 있었고, 이 때문에 1775년부터 비밀 리에 미국 식민지를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대륙회의는 프랑스와의 공식 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1776년에 실라스 딘(Silas Deane) 및 아서 리(Arthur Lee)와 더불어 벤저민 프랭클린을 프랑스로 파견했습니다. 조약 체결식이 있던 날, 프랭클린은 상징적으로 1774년 영국의 추밀원에 소환되었을 때 입었던 갈색 벨벳 옷을 입고 조약 체결식에 나타났습니다. 당시, 프랭클린은 영국이 의도적으로 식민지를 억압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국의 문서를 공개한 일 때문에 절도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미국이 새러토가 전투에서 영국 군을 무찌르면서 독립에 대한 강력한 의지와 공식 동맹을 체결하기에 충분한 존재라는 점을 증명한 후에는 프랑스의 지원이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루이 16세는 프랭클린과 그 동지들이 재정지원을 요청한 지 나흘 만에 미국 식민지에 대한 재정지원을 재가했습니다.

미국의 독립전쟁 중에, 프랑스는 육군 약 12,000명과 해군 약 32,000명을 파견하여 미국의 싸움을 지원했는데, 프랑스에서 파견된 사람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바로 라파예트 후작(Marquis of Lafayette)이었습니다. 라파예트는 함께 전쟁을 치르면서 당시 미국 군 총사령관이었던 조지 워싱턴과 친구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