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의 불꽃으로…

Booker T. Washington
Booker T. Washington

1895년 9월 18일
부커 워싣턴, 애틀랜타 타협안 연설


1895년 9월 18일, 군중 속에서 부커 워싱턴의 그 유명한 ‘애틀랜타 타협안’(Atlanta Compromise) 연설을 듣고 있던 한 기자는 그 때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그의 눈과 얼굴 전체가 예언의 불꽃으로 타올랐다… 그의 연설에 청중은 감전되었고, 그의 연설에 대한 반응은 회오리바람의 목에서 나온 것 같았다.” 1895년 ~ 1915년 사이 미국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아프리카 계 미국인의 한 사람이었던 부커 워싱턴은 사상 처음으로 흑인과 백인이 섞인 남부의 청중을 앞에 두고 연설한 아프리카 계 미국인이었습니다. 워싱턴은 청중들에게 어떤 말을 했을까요?

워싱턴은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면화 주 및 국제 전시회(Cotton States and International Exhibition) 개장식 연설에서 근면, 인내, 관용의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미국 남북전쟁 후 재건기에 남부에서 일어난 폭력과 소요에 지친 워싱턴은 흑인들에게 스스로 돕고, 경제적 안정을 달성하고, 정치적 평등이 시간을 두고 실현되게 하자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뒤 보이스 등 일부 아프리카 계 미국인 지도자들은 즉각적인 정치적, 지적 평등 대신에 점진적인 경제, 사회적 권리 신장을 강조한 워싱턴의 연설을 배격했습니다. 뒤 보이스는 즉각적인 평등을 요구하는 ‘반 부커’(anti-Bookerite)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평등을 얻기 위해 참을성 있게 접근하자는 워싱턴의 제안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연설을 하던 당시 부커 워싱턴은 힘들고 먼 길을 걸어 그 때의 지도적 위치로 올랐습니다. 워싱턴은 자서전인 「노예의 굴레를 벗고 Up From Slavery」에서, 노예로 시작하여 웨스트 버지니아의 탄광에서 일하다가 햄튼 대학(Hampton Institute)에서 공부한 후 결국 교직에까지 오게 된 인생역정을 묘사했습니다. 워싱턴은 1881년에 앨러배마에서 터스키지 일반 공업 대학(Tuskegee Normal and Industrial Institute)을 세워 미국 최고 수준의 아프리카 계 미국인 교육기관으로 키웠습니다. 워싱턴은 ‘순수하게 사회적인 모든 측면에서 우리는 손가락처럼 분리될 수 있다. 그러나, 상호 발전에 필수적인 모든 측면에서 우리는 손처럼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워싱턴의 생각에 동의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