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되었지만 동등하다?

1896년 5월 18일
플레시 대 퍼거슨 소송


미국의 남부 주들은 버스와 기차, 호텔, 극장, 학교에서 흑인과 백인을 분리하는 정책을 50년 이상 시행했습니다. 1896년 5월 18일, 대법원은 플레시 대 퍼거슨 사건에서 기차에 ‘분리되었지만 동등한’(separate-but-equal) 시설을 설치한 것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결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 판사 중 한 명인 존 마셜 할런(John Marshall Harlan)은 이 판결에 동의하지 않고, 공공 시설에서 흑인을 백인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인종분리’라 함)은 불평등을 초래하며 한 인종이 다른 인종 보다 열등하다고 표시하는 행위라고 주장했습니다.

아프리카 계 미국인 의원인 벤저민 아넷(Benjamin W. Arnett)은 1886년에 인종분리 정책이 시행되고 있던 오하이오에서 기차를 탄 경험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저는 이 자유로운 나라에서 스무 시간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여행을 했습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고 유색 인종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피부 색이 엷은 다른 승객들은 아침과, 점심과, 저녁을 모두 먹었습니다. 여행을 하는 동안 우리는 [흑인 전용 칸]에 배정되었고, 침대 칸의 침상을 살 권리도 박탈 당했습니다.” 이러한 법에 의한 불평등이 마침내 어떻게 변했을까요?

1930년대에도 인종분리의 관행은 여전히 광범하게 퍼져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1937년 엄청난 홍수가 아칸소 주를 휩쓸었을 때, 백인 이재민과 흑인 이재민은 별도의 구호시설에 수용되었습니다. 마침내, NAACP 변호사인 서굿 마셜(Thurgood Marshall)의 주장을 들은 후, 대법원은 1954년 5월 17일에 플레시 대 퍼거슨 사건의 기존 판결을 뒤집었습니다.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사건(Brown v. the Board of Education)에서는, 재판부는 할런 판사가 50년 전에 한 말에 동의하며 인종분리가 헌법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만장일치로 내렸습니다. 사람들을 (인종에 따라) 사람을 분리시킨 법과 나중에 이 관행을 금지한 법에 대해 더 알고 있는 것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