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코플런드

Araon Copland
Araon Copland

1900년 11월 14일
작곡가 아론 코플런드 출생


자랄 때는 나중에 무엇이 되고 싶은지 알지 못하다가 성인이 되어서야 할 일을 찾게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론 코플런드는 15살 때 작곡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1900년 11월 14일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러시아 계 유태인 이민자인 부모님의 아들로 태어난 코플런드는 오페라, 발레 음악, 교향악, 밴드 음악, 실내악, 합창곡, 영화 음악 등을 작곡하는 유명한 작곡가가 될 작정이었습니다. 코플런드는 어떻게 꿈을 이루었을까요?

코플런드는 공립 고등학교를 다닐 때 누나에게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지휘자가 되기 위한 첫 단계로, 통신강좌로 화음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1921년 여름, 코플런드는 프랑스에 있는 미국인을 위해 새로 생긴 학교에 다녔는데, 여기서 탁월한 스승인 나디아 불랑제(Nadia Boulanger)의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파리에서 3년을 보낸 후, 코플런드는 뉴욕으로 돌아와서, 뉴욕의 카네기 홀에서 공연할 스승 불랑제를 위해 오르간 심포니를 작곡했습니다. 작곡가로서의 경력이 시작된 것입니다.

코플런드는 당대의 경향을 잘 알고 있었고, 재즈 리듬이나 새로운 형식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코플런드는 라디오, 축음기, 영화가 현대 음악을 즐기는 새로운 청중을 만들어 내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코플런드는 음악을 단순화한 곡을 썼고, 미국적 경험을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작품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 민속을 토대로 작곡한 <빌리 더 키드 Billy the Kid>(1938년), <로데오 Rodeo>(1942년), <애팔래치아의 봄 Appalachian Spring>(1944년) 등 세 곡의 발레 음악이었는데, 이 음악은 댄서인 마샤 그래엄(Martha Graham)이 안무하여 춤으로 공연했습니다. 코플런드와 그래엄은 함께 발레 음악을 작곡했지만, 그래엄이 코플런드에게 이런 편지를 쓴 적이 있습니다. “당신의 음악을 가지고 일을 해왔습니다. 음악이 너무 아름답고 정교하더군요. 이제 당신의 음악에 중독이 되었습니다.” 이 세 곡의 발레 음악은 의회 도서관이 의뢰한 것으로, 의회 도서관에서 처음 공연되었습니다.

코플런드는 손튼 와일더(Thornton Wilder)의 희곡 <우리 마을 Our Town>을 각색한 영화(1940년), 존 스타인벡의 단편 소설인 <두 친구 Of Mice and Men>(1939년)와 <빨간 조랑말 The Red Pony>(1948년)을 각색한 영화 등 초기 영화를 위한 음악을 많이 썼습니다. 재능 있는 작곡가에 그치지 않았던 코플런드는 교사, 음악에 관한 책과 글을 쓰는 저술가, 음악 이벤트 기획자, 그리고 인기 있는 지휘자이기도 했습니다 코플런드는 30개 이상의 명예 학위와 수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코플런드의 음악이 미국의 정신을 독창적으로 표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코플런드는 열 다섯 살 때 마음 먹은 일을 해내었습니다. 코플런드의 <애팔래치아의 봄>을 아직 못 들어 보았다면, 지금 한 번 들어보세요. 이 음악에서 봄마다 터져 나오는 자연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