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목회자?

José Manuel Gallegos
José Manuel Gallegos

1815년 10월 30일
호세 마누엘 갈레고스 출생


호세 마누엘 갈레고스 신부는 뉴 멕시코의 역사에서 영향력과 인기를 누렸지만, 많은 논란도 함께 불러 일으킨 인물입니다. 갈레고스 신부는 종교와 정치에 모두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1815년 10월 30일 누에보 멕시코(Nuevo Mexico: 뉴 멕시코)에서 태어난 갈레고스는 프란체스카 수도회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수도회는 갈레고스에게 주님에 대한 사랑을 가르쳤을 뿐 아니라 정치적 이상도 채워 넣었습니다.

갈레고스가 태어났을 때, 누에보 멕시코는 스페인 식민지인 멕시코의 일부였습니다. 누에보 멕시코가 미국에 편입되었을 때, 30대였던 갈레고스는 정치적 신념을 펼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미국이 멕시코와 전쟁을 치를 무렵, 갈레고스는 신부가 되었습니다. [미-멕시코 전쟁(U.S.-Mexican War)은 1846년에 시작되었습니다.] 1848년 전쟁이 끝나자, 누에보 멕시코는 미국의 준주인 뉴 멕시코가 되었습니다. 갈레고스는 1851년 뉴 멕시코 최초의 준주 위원회(Territorial Council) 의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같은 해, 갈레고스는 프랑스 카톨릭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부의 자격을 정지 당했습니다. 갈레고스는 이제 더 많은 에너지를 정치에 쏟아 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1853년, 갈레고스는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히스패닉 계 하원의원이 되었습니다. 갈레고스가 연임에 성공하자, 정적인 미구엘 오테로(Miguel A. Otero)는 멕시코 인들이 불법으로 찬성 표를 던졌기 때문에 갈레고스가 당선될 수 있었다고 주장하고 의회가 이를 믿도록 설득했습니다. 이 때 갈레고스는 워싱턴을 떠났지만, 그렇다고 정계를 떠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남북전쟁 중, 남부동맹은 뉴 멕시코의 산타페를 점령했습니다. 그러나, 연방 지지자였던 갈레고스는 여러 경로로 연방 군에 정보와 조력을 제공했습니다. 1873년, 갈레고스는 뉴 멕시코 의원으로서 다시 한 번 미국 하원에 입성했습니다. 임기가 끝나자, 갈레고스는 산타페로 돌아왔고, 1875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