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봉사에서 대통령으로

Andrew Johnson
Andrew Johnson

1808년 12월 29일
앤드류 존슨 대통령 출생


앤드류 존슨의 어린 시절만 보면 이 사람이 미국 최고의 공직에 오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거예요. 미국의 17대 대통령인 앤드류 존슨은 1808년 12월 29일, 노스 캐롤라이나 주 롤리(Raleigh)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타계하면서 가족은 가난에 빠졌습니다. 10세 때부터 17세 때까지 존슨은 재봉사의 도제로 일했습니다. 재봉사 도제 일을 여러 해 동안 하면서 어머니와 더불어 테네시 주 그린빌로 이사했습니다. 존슨은 한 번도 학교를 다니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결혼 후 아내인 엘리자 머카들(Eliza McCardle)이 존슨의 가정교사가 되어 존슨에게 훌륭한 보통교육을 시켰습니다.

정치연설에 재능이 있었던 존슨은 정치적 계단을 빠르게 밟아 올라갔습니다. 1829년, 존슨은 최초의 공직인 시 의회 의원에 당선되었습니다. 곧 이어 그린빌의 시장, 테네시 주 의회 의원, 미국 하원의원, 테네시 주지사, 미국 상원의원 등을 빠르게 거쳤습니다. 의회에서, 존슨은 미국의 서부 확장을 강하게 지지하는 세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존슨은 남부 출신의 동료 의원들과는 교분을 쌓지 못했습니다. 남북 분리의 위기와 남북전쟁을 거치는 동안 의회에서 남부 출신 의원으로서 연방을 확고하게 지지한 사람은 존슨 밖에 없었습니다. 북군이 테네시의 일부를 점령한 후 링컨은 존슨을 테네시 주의 군정지사(military governor)로 임명했습니다. 존슨은 폭도의 린치와 총탄의 위협 속에서도 이 자리를 수락했습니다.

2년 후, 민주당원이었던 존슨은 공화당원이었던 링컨의 러닝 메이트가 되었습니다. 1865년 4월, 링컨이 암살되자, 존슨은 부통령에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대통령이 되자, 대외문제는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나, 국내문제에서 존슨은 위기를 맞았습니다. 남북전쟁 후 미국을 재건하려고 노력하던 존슨에 대해, 급진적인 북부의 공화당원들은 남부에 대한 존슨의 정책이 엄격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악의와 깊은 정치적 불신이 1868년 2월 의회의 존슨 탄핵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몇 달 후 상원은 존슨의 탄핵 혐의에 대해 불과 한 표 차이로 무죄 결정을 내렸습니다. 존슨은 남은 대통령 임기를 채웠으나, 탄핵의 낙인은 기억을 떠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