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영부인

Martha Washington
Martha Washington

1802년 5월 22일
마샤 워싱턴 타계


마샤 댄드리지 커스티스 워싱턴(Martha Dandridge Custis Washington)은 최초의 미국 대통령 영부인이었습니다. 이 외에 마샤 워싱턴에 대해 아는 것은 없나요? 마샤 워싱턴은 1802년 5월 22일, 파란만장한 삶을 뒤로 하고 고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샤 워싱턴이 1759년 조지 워싱턴과 결혼했을 때, 마샤는 자녀를 둘 둔 27세의 미망인이었습니다. 죽은 남편 대니얼 파크 커스티스(Daniel Parke Custis)로부터 15,000 에이커에 달하는 농지를 물려받은 마샤 워싱턴은 버지니아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 중 한 명이었습니다. 조지 워싱턴과 결혼한 후, 마샤 워싱턴의 사교생활은 크게 변했습니다.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워싱턴은 아내와 새로 얻게 된 두 아이 마샤[Martha. 애칭 ‘팻시’(“Patsy”)]와 존 파크[John Parke. 애칭 ‘재키’(“Jacky”)]를 데리고 워싱턴 DC에서 남쪽으로 15 마일 지점에 있는 마운트 버논의 집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여기서 워싱턴 부부는 아이들을 키우고 버지니아 사교계와 교분을 나누면서 즐거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1768년과 1775년 사이에, 워싱턴 부부는 2천 명 이상의 손님을 초대했으며, 손님 중에는 집에 오래 머무는 사람도 없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대통령이 되자, 마샤 워싱턴의 삶에서 손님 접대가 더욱 중요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마샤 워싱턴은 유럽 열강 정부가 베푸는 파티에 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미국의 임시 수도였던 뉴욕과 필라델피아에서 성대한 파티를 열었습니다. 이러한 파티는 영부인에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다소 무리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영부인은 미국의 안주인으로서 너그러움과 따뜻함으로 이름 높았지만, 마샤 워싱턴은 버지니아에서 보내는 호젓한 시간을 그리워했습니다. 마샤 워싱턴은 조카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여기서는 죄수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벗어나면 안 되는 경계가 정해져 있어.” 조지 워싱턴의 대통령 임기가 끝나자, 워싱턴 부부는 마운트 버논으로 돌아왔고, 불과 2년 후에 남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샤 워싱턴이 타계한 후에는 마운트 버논의 남편 옆에 마련된 수수한 무덤에 묻혔습니다. 여러분도 마샤 워싱턴처럼 훌륭한 영부인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까요? 미국의 다른 영부인에 대해 아는 것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