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리 주의 분열

1821년 8월 10일
스물 네 번째 주가 된 미주리


미주리 지역은 미국 사상 최고의 부동산 거래 중 하나인, 1803년의 루이지애나 매입을 통해 미국에 편입되었습니다. 미주리가 1821년 8월 10일에 미국의 24번째 주가 되기 전에는 연방에서 노예 주와 비 노예 주 간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어떠한 타협을 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타협 때문에 나중에 이웃 간에 싸움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정치가 헨리 클레이가 만든 1820년의 미주리 타협안에 따르면, 미주리는 노예 주로서 연방에 가입하고 메인은 비 노예 주로서 연방에 가입하여, 노예 주와 비 노예 주의 수가 각각 12개가 되도록 되었습니다.

존 스미스(John F. Smith)는 인터뷰에서 1861년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집단인 제이호커(Jayhawkers)가 집에 찾아 온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제이호커 중 한 명이 미주리의 노예 주인인 아버지를 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 . . (그러다) 누군가 고함치는 소리를 듣고 우리는 길 위쪽을 쳐다 봤어요… 마이어스 판사가 다가오고 있었는데 머리를 흔들고 있었고 눈에서는 불꽃이 튀고 있었어요… 그 모습을 보고 아버지를 쏘겠다고 위협하던 사람은 총을 옆에 떨어뜨렸고, 제이호커들이 모두 돌아서더니 채찍 맞은 강아지처럼 꼬리를 내리더군요.”

남북전쟁은 미주리를 지속적으로 분열시켰습니다. 미주리 주는 연방에 남았지만, 주민의 일부는 남부동맹(Confederacy)을 위해 싸우기로 했습니다. 스미스의 아버지와 아버지를 구해 준 마이어스 판사는 노예제도에 대한 생각이 달랐지만 서로 절친한 친구로 지내왔는데, 남북전쟁을 계기로 서로 반대편에 서서 싸우게 되었습니다.

미주리에서 건조된 철갑선은 미주리 함대(Missouri Squadron)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철갑선은 남부동맹 군대와 보급품의 이동을 막음으로써 연방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