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맹한 장군

John J. Perishing
John J. Perishing

1948년 7월 15일
존 퍼싱 장군 타계


존 퍼싱은 아메리카 원주민과 싸웠고, 판쵸 비야(Pancho Villa)를 추격해 멕시코로 들어갔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 미군을 강력한 전투군으로 만들었습니다. 1948년 7월 15일 세상을 떠났을 때, 퍼싱 장군은 영웅의 장례식 거쳐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혔습니다.

1860년 9월 13일, 미주리 주의 래클리드(Laclede)에서 태어난 퍼싱은 6남매의 장남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집에서 퍼싱을 가르쳤고, 퍼싱은 이를 통해 배움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퍼싱은 어떻게 군의 영웅이 되었을까요?

웨스트 포인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퍼싱은 서부의 제6 기병연대를 지휘했고, 여기서 아파치 족과 수 족과의 전투에 참가했습니다.

새로운 법이 통과되어 미국 육군이 흑인 병사로 구성된 기병연대와 보병연대를 조직하게 되자, 퍼싱은 흑인으로 구성된 연대 중의 하나인 몬태나의 제10 기병연대 중위로 부임했습니다. 흑인으로 구성된 제9 기병대대와 제10 기병대대는 1898년 미-서 전쟁 중의 산티아고 전투와 산 후안 언덕 전투에서 두각을 나타내었습니다. 이 두 전투에서 보여준 용맹으로 퍼싱은 은성 무공훈장(Silver Star Citation)을 받았지만, 그 후 악명 높은 판초 비야를 상대하게 되었습니다.

윌슨 대통령은 퍼싱을 보내 국경을 넘어 미국을 공격하고 인명을 살상해온 멕시코의 무법자 판초 비야를 추격하게 했습니다. 퍼싱과 미군은 9개월 동안 미꾸라지 같은 판초 비야를 쫓아 멕시코까지 들어갔습니다. 퍼싱은 결국 비야를 잡지 못했지만, 윌슨은 외국에서 명령을 수행한 퍼싱 장군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자, 윌슨은 퍼싱을 유럽에 파견된 미국 긴급 전개군의 사령관으로 임명했습니다. 1948년에 타계하기 전에, 퍼싱은 탁월한 공적을 인정 받아 미국 육군 원수(General of the Armies of the United States)가 되었습니다. 퍼싱은 조지 워싱턴 이후 처음으로 이 계급에 오른 장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