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정의를 요구한 여성

Rosa McCauley
Rosa McCauley

1955년 12월 1일
로자 팍스, 시민 불복종으로 체포


로자 팍스는 신념을 위해 일어섰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신념을 위해 ‘자리에 앉았습니다’. 1955년 12월 1일 저녁, 아프리카 계 미국인인 팍스는 하루 종일 일한 뒤라 피곤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자리에 앉기로 했습니다. 팍스는 자리에 앉아 백인 승객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고, 버스가 만원일 때 흑인은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고 규정한 앨러배마 주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흑인들은 또 버스의 뒤쪽에만 앉을 수 있었습니다.) 팍스의 체포로 381일 간의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대법원은 1956년에 대중교통에서 인종분리를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1960년대 민권운동의 불을 댕긴 로자 팍스는 누구였을까요?

로자 매컬리(Rosa McCauley)는 1913년에 태어나, 스무 살에 레이먼드 팍스와 결혼했습니다. 레이먼드는 로자에게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도록 용기를 북돋아주었습니다. 이 부부는 전미 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의 몽고메리 지부에 활발하게 참여했습니다. 재봉사의 조수로 일하면서, 팍스는 몽고메리 지부의 서기로도 일을 했습니다. 나중에 팍스는 NAACP 청년위원회(Youth Council)의 고문도 지냈습니다. 인종을 이유로 두 번에 걸쳐 투표할 권리를 인정 받지 못했던 팍스는 유권자 연맹(Voters League)와 더불어 흑인들이 유권자 등록을 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팍스가 체포되자 팍스의 재판일에 맞춰 1일 간의 버스 보이콧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NAACP는 인종분리를 시행하고 있는 대중교통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현지의 덱트터 가 침례교회(Dexter Avenue Baptist Church)의 신임 목사가 보이콧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 목사의 이름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였습니다. 킹은 정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비폭력을 주장했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무기를 사용해야 한다.” 1956년 12월, 대법원은 대중교통에서 인종분리를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1년 이상 끌어온 보이콧도 끝났습니다. 로자 팍스는 ‘민권운동의 어머니’로 알려졌고, 전세계에서 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로자 팍스와 같은 상황에 있었다면, 로자 팍스 같은 행동을 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