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협상가

Ralph Bunche
Ralph Bunche

1971년 12월 9일
미국의 외교관 랠프 번치 타계


싸우는 두 사람을 화해시키려 해 본 적이 있나요? 뛰어난 솜씨가 필요한 일이지만 미국의 외교관 랠프 번치는 탁월한 훈련과 경험과 더불어 타고난 협상의 재능이 있었습니다. 번치는 1971년 12월 9일에 뉴욕 시에서 세상을 떠났지만 그 때는 이미 1950년에 노벨 평화상을 타는 등 많은 정치적, 개인적 업적을 이룬 다음이었습니다. 외교관, 중재자, 교육자, 작가, 사회 이론가, 정치 지도자로서 번치의 경력은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후 시작되었습니다.

번치는 정부학과 국제관계학 석사 학위를 동시에 취득했습니다. 1928년, 번치는 워싱턴 DC의 하워드 대학에 정치학과를 설립했습니다. 1938년에서 1940년 사이, 번치는 미국의 인종 관계에 대한 기념비적인 연구를 공동으로 했는데, 이 연구는 ‘가난이 가난을 낳는다’는 이론을 도출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번치는 전쟁부와 국무부에서 일을 했습니다. 번치는 국제연합(UN)의 초기 기획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UN에서 남은 평생을 보내면서 중요한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1948년에 UN의 팔레스타인 협상 수석 대표가 갑자기 암살되자, 랠프 번치가 이 일을 이어 받았고, 협상을 통해 제1차 아랍-이스라엘 전쟁을 성공적으로 끝냈습니다. 번치는 이 휴전을 이끌어 낸 공로를 인정받아 1949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번치는 후에 수에즈 운하, 콩고, 사이프러스 등에서 UN 평화유지 임무도 감독했습니다. 번치는 또 22년 간 전미 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의 이사로도 재직했습니다. 생애의 마지막 10년 간, 번치는 민권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으며, 앨러배마의 셀마와 몽고메리에서는 61세의 나이로 행진에도 참여했습니다. 번치는 평생을 평화 협상에 바친 사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