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대전 승리에 기여한 퍼싱 장군

John J. Pershing
John J. Pershing

1918년 9월 12일
미군, 제 1차 세계대전 참전 후 최초의 대규모 공격 감행


미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1917년부터 미군은 유럽에서 전투에 참가했습니다. 그러나, 미군은 이미 확고한 진지를 구축하고 있는 프랑스 부대나 영국 부대를 지원하는 역할만 했습니다. 1918년 9월 12일, 퍼싱 장군이 지휘하는 미국 긴급 전개군(American Expeditionary Forces: AEF)은 유럽에서 독자적으로 최초의 대규모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미군의 성공적 작전은 전쟁이 연합국에 유리하게 전개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결국, 미군은 예상 보다 빨리 독일을 격퇴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퍼싱의 첫 번째 공격 목표는 요새화된 프랑스의 도시인 뵈르댕과 낭시 사이의 삼각형의 땅으로 생 미옐 돌출지(St. Mihiel salient)로 알려진 곳이었습니다. 독일군은 파리로 진격하는 거점으로 삼기 위해 생 미옐 돌출지를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하면 연합군에 엄청난 타격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퍼싱 장군이 지휘하는 미군 제1군은 이 요새에 포격을 가했고, 불과 나흘 만에 이 지역의 독일 거점을 파괴했습니다. 퍼싱 장군은 독자군으로서 긴급 전개군의 독자성을 유지할 의지가 강했지만, 연합군 사령관 마셜 페르디난드 포크(Marshal Ferdinand Foch)가 다른 전투인 뫼즈-아르곤 전투에서 미군-연합군을 지휘하도록 허용했습니다. 그 결과가 어땠을까요?

뫼즈-아르곤 전투에서, 미군-연합군의 서부전선 공세는 독일의 퇴각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10월이 되자, 독일의 패색이 짙어졌고, 전쟁은 예상 보다 일찍 끝나게 되었습니다. 지도자들은 1918년 11월 11일에 휴전협정에 서명했습니다.

이러한 결과가 나오기 전에, 퍼싱 장군은 본국에 있는 미국 국민에게 프랑스의 전장에서 녹음한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퍼싱 장군은 ‘조상의 정신’을 지지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우드로우 윌슨 대통령은 이러한 지지 요청을 격려했습니다. 퍼싱은 그 전에 1919년까지 유럽에 윌슨이 파견하고자 하는 규모 보다 큰, 미군 300만 명이 필요하다고 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퍼싱이 이끄는 미군이 1918년에 세운 혁혁한 전공은 나중에 추가 파병될 뻔했던 병사들의 생명을 구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