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너머’는 이제 그만

Treaty of Versailles
Treaty of Versailles

1919년 6월 28일
베르사유 조약으로 제 1차 세계대전 종식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이 마침내 끝났습니다. 이 최초의 세계대전은 900만 ~ 1,3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사상 유례 없는 피해를 초래했습니다. 독일은 1918년 11월 11일에 공식적으로 항복했고, 모든 국가가 평화 조건에 대한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전투를 중단하는 데 동의했습니다. 1919년 6월 28일, 독일과 연합국(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포함)은 베르사유 조약에 서명하여 전쟁을 공식적으로 끝냈습니다. (베르사유는 파리 외곽으로 10 마일 떨어진 지점에 있는 프랑스의 도시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조약의 조건, 특히 독일이 침략의 대가로 치를 막대한 부담에 반대했기 때문에 이 조약에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미국은 1921년에 독일과 별도로 합의안을 협상했습니다. ‘대전쟁’이라고도 하는 제1차 세계대전이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다른 문제도 있었지만, 유럽에서는 영토와 국경을 둘러싼 분쟁이 있던 가운데, 세르비아인 광신자가 오스트리아의 페르디난드 대공을 1914년 6월 28일에 암살하면서, 관련된 국가들이 정면으로 충돌하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정확히 한 달 후에 전쟁이 발발했고, 1915년 말에 오스트리아-헝가리, 불가리아, 독일과 오토만 제국이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벨기에,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일본으로 구성된 연합국을 상대로 싸우게 되었습니다. 영국의 여객선인 루지타니아 호(Lusitania)가 독일 잠수함의 공격을 받고 침몰하면서 128명의 미국인이 사망한 사건이 있은 후, 미국은 1917년에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베르사유 조약은 독일군을 10만으로 제한하는 등 독일에 혹독한 제약을 가했습니다. 이 조약에 반대한 윌슨 대통령은 ‘14개 기본 원칙’(Fourteen Points)이라는 별도의 화해 안을 만들었습니다. 이 기본 원칙 중에는 국제연맹이 ‘전쟁의 범죄’를 막는 조항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윌슨은 또 모든 화해 조건을 공개적으로 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베르사유 조약의 실제 조건에는 정복된 독일의 영토를 연합국 사이에 나누어 가지는 비밀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여러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조건이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을 촉발시켰다고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