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스를 부르는 여자

Billie Holiday
Billie Holiday

1915년 4월 7일
빌리 할러데이 출생


이 여성은 블루스를 제대로 부를 줄 알았습니다. 재즈 가수로 나중에 ‘레이디 데이’(Lady Day)라는 별명이 붙은 빌리 할러데이는 1915년 4월 7일 메릴랜드의 볼티모어에서 태어났습니다. 자서전인 「 블루스를 부르는 여자 Lady Sings the Blues 」에서 할러데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아빠는 어려서 결혼했어요. 아빠가 열 여덟, 엄마는 열 여섯, 제가 세 살이었으니까요.”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내고 제대로 된 음악 교육도 받지 못했지만, 빌리 할러데이는 1931년에 할렘의 나이트클럽에서 가수로 데뷔했습니다. 1933년에는 첫 음반도 냈습니다. 할러데이의 부모님이 이름을 정말 ‘빌리’라고 지었을까요?

엘리노라 페이건(Eleanora Fagan)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할러데이는 초기의 영화 스타인 빌디 도브(Billie Dove)를 본 따 예명을 ‘빌리’라고 지었습니다. 할러데이는 스타가 되고 있는 중에도 인종차별을 겪었습니다. 일부 법률에 의해 분리된 시설, 분리된 공공장소, 버스의 흑인 전용 좌석 등이 생겨났고, 어떤 식당은 백인들만 손님으로 받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할러데이는 흑인들을 받지 않는 클럽에서 노래할 때도 있었습니다. 할러데이가 1939년에 녹음한 버전의 <이상한 과일 Strange Fruit>은 린치에 관한 노래였습니다. 이 노래는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비인도적 행위에 대한 항의를 재즈 보컬로 가장 끔찍하고 슬프게 표현한 노래’라는 평을 들었습니다.

빌리 할러데이는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나 베니 굿먼(Benny Goodman) 등 많은 위대한 재즈 음악인과 함께 공연했습니다. 할러데이는 작은 클럽이나, 큰 콘서트 홀을 가리지 않고 노래를 불렀으며, 영화 <뉴 올리언즈>에서도 노래를 불렀습니다. 또 <내 남자를 사랑하네 I Love My Man>, <아이에게 축복을 God Bless the Child> 등의 곡을 직접 작곡하고 편곡하기도 했습니다. 할러데이가 뉴욕에서 44세를 일기로 타계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레이디 데이’를 잃은 것을 슬퍼했습니다. 빌리 할러데이의 음반을 들어 보았나요? 가족들에게도 한 번 물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