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의 ‘황금 시대’

President Harding
President Harding

1922년 2월 8일
하딩 대통령, 백악관에 라디오 설치


1922년 2월 8일은 백악관에서 중요한 일이 있었던 날입니다. 이 날, 하딩 대통령은 라디오를 설치했습니다. 당시 라디오는 최첨단 기술이었고 백악관이 그 첨단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거의 2년이 지난 시점에, 하딩의 뒤를 이은 캘빈 쿨리지는 라디오로 방송을 한 첫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쿨리지의 워싱턴 탄신일 연설은 미국 전역의 42개 방송국에서 중계되었습니다.

이 역사적 중계가 있기 전에, 라디오는 1924년 대통령 선거에서 쿨리지가 승리를 거두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선거 전날 밤, 쿨리지는 사상 최대 규모의 라디오 청취자들이 선거운동 마지막 연설 방송을 듣고 있는 가운데 역사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쿨리지는 선거에서 쉽게 이겼고, 3월에는 미국인들이 처음으로 대통령 취임 선서를 라디오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1920년대에 라디오는 오늘날 흔히 말하는 ‘황금 시대’를 구가하고 있었습니다. 방송은 단순한 사업이나 일이 아니었고 아주 매력적인 전문직업이었습니다. 라디오는 공식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아나운서는 스튜디오에 청중이 없더라도 턱시도나 야회복을 입고 일을 했습니다. 각 지역 방송국에서 전속 관현악단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고, 일부는 자체 극단도 운영했습니다. 각 지역 방송국은 매주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듣는 팬 층을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라디오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고, 그 영향력은 오늘날의 TV나 인터넷과 비슷했습니다.

1920년대부터 사람들은 라디오 주변에 모여 함께 프로그램이나 뉴스를 들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TV 앞에 모이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라디오가 인기를 얻으면서, 라디오는 정치에서도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되었습니다. 1933년에 대통령이 된 프랭클린 딜라노 루즈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는 라디오를 이용해서 미국 국민들에게 정기적으로 국정 소식을 전했습니다. 루즈벨트는 첫 연설에서 대공황에 대처하는 계획을 설명했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지난 며칠 동안 이루어진 일과, 그 이유와, 앞으로 할 일들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연설은 워싱턴의 CBS 방송국 관리자인 해리 부처(Harry Butcher)가 이름 붙인 ‘노변(난롯가) 정담’(fireside chats)으로 알려졌습니다.

오늘날, 아직도 대통령의 연설이 라디오로 중계되고 있지만, 연설을 라디오로 듣기 보다는 TV로 보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1939년, 루즈벨트는 TV로 중계하는 연설을 한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TV가 ‘황금 시대’로 접어들면서 라디오의 ‘황금 시대’는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