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리지와 소비자

Calvin Coolidge
Calvin Coolidge

1923년 8월 3일
캘빈 쿨리지 (Calvin Coolidge) 대통령 취임


하딩 대통령이 임기 중에 갑자기 서거하면서 부통령인 캘빈 쿨리지가 1923년 8월 3일에 대통령직을 승계했습니다. 쿨리지는 다음 선거에서도 이겨 미국의 대통령직을 6년 간 맡았습니다. 이 사진에서 쿨리지는 하딩을 추모하는 의미로 검정색 완장을 차고 있습니다. 하딩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쿨리지는 정부의 재건에 나섰습니다. 그 때는 미국이 번영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쿨리지는 어디에 노력을 집중했을까요?

쿨리지는 기업에 집중했습니다. 쿨리지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미국인들은 갖가지 새로운 상품과 산업을 발명했습니다. 쿨리지의 정책에 의해 기업은 대량 생산을 통해 생산한 혁신적 상품을 일반 대중에게 판매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생산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고, 이에 따라 더 많은 미국인들은 소비할 돈을 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과거 어느 때 보다 많은 소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인은 소비자가 되었습니다. 진공 청소기, 세탁기, 자동차, 라디오, 옷 등이 말 그대로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습니다. 어디서 들어 본 얘기 같지 않나요? 이처럼 소비가 성장하면서 광고 산업이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 극장 광고는 모든 신상품과 녹슬지 않는 금속 코르셋을 팔려고 하는 등의 광고를 비꼬고 있습니다. 아야!

방대한 양의 상품(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를 ‘상품의 제국’(empire of things)이라고 했답니다.)을 구매한 사람들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고 있었습니다. 일부 미국인들은 새로운 신용대출을 통해 빚을 지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소비와 빚이 늘어나자, 근검절약 운동(Thrift Movement)이 일어나 미국인들에게 저축과 현명한 소비의 중요성을 가르쳤습니다. 쿨리지 대통령은 뉴 잉글랜드 인 특유의 소박함과 근검절약의 상징이 되었고, 이 사진처럼 널리 공개된 사진에 자주 등장했습니다.

여러분도 소비자인가요? 부모님께 오늘날의 소비자 경제에 대해 여쭤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