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재채기

kinetoscope
kinetoscope

1887년 8월 31일
토머스 에디슨, 키네토스코프 특허 획득


조수인 딕슨(W.K.L. Dickson)이 활동사진을 보는 기계(motion picture viewer)를 발명했을 때, 에디슨은 이를 처음에는 중요치 않은 장난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기계는 시장에 나오자마자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에디슨은 이 기계의 발명으로 축음기의 판매량이 늘기를 바랐지만, 그림과 소리를 맞출 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에디슨은 무성영화를 보는 장치인 키네토스코프의 개발을 지휘했습니다. 에디슨은 1887년 8월 31일에 이 발명품에 대한 특허를 냈습니다. 이 초기 키네토스코프 영화의 대부분은 필름에 함유된 질산염 때문에 분해되거나 불타 버렸습니다. 그러나, 에디슨은 다행히 필름의 각 프레임을 종이에 복사해 둔 ‘밀착인화본’(contact prints)을 남겼습니다. 이제, ‘프레드 오트의 재채기’(Fred Ott’s Sneeze)로 널리 불리는, 에디슨이 만든 최초의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초기의 영화는 모두 길이가 짧았는데, 이는 영화를 만든 에디슨과 같은 이들이 사람들이 ‘깜박거리는 화면’을 10분 이상 참고 볼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한 번에 한 사람 밖에 볼 수 없었던 키네토스코프는 곧 한 방에 있는 사람 모두에게 한꺼번에 영화를 보여줄 수 있는 스크린 영사기로 대체되었습니다.

영화를 많이 찍고 싶었던 에디슨과 딕슨은 최초의 영화 스튜디오인 블랙 마리아를 설계하고 1893년에 완공했습니다. 이 이름은 경찰의 죄수 호송차를 뜻하는 슬랭으로, 사람들이 스튜디오가 죄수 호송차를 닮았다고 한 데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무성영화의 ‘깜박거리는 화면’을 10분 이상 볼 수 있나요?

에디슨은 블랙 마리아에서 200 ? 300편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1899년에 블랙 마리아에서 만들어진 ‘세 곡예사’(Three Acrobats)는 지금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초기 영화에서 시작된 영화 산업은 오늘날까지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에디슨이 ‘스타워즈’나 ‘타이타닉’을 보면 뭐라고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