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다코다, 두 다코다…

Dakota
Dakota

1889년 11월 2일
노스 다코타와 사우스 다코타의 연방 편입


수도의 위치를 놓고 논란을 벌인 끝에 다코타 준주(Dakota Territory)는 1889년에 둘로 나뉘어 노스 다코타와 사우스 다코타가 되었습니다. 그 해 11월 2일, 노스 다코타와 사우스 다코타는 각각 연방의 서른 아홉 번째 주와 마흔 번째 주로 편입되었습니다. 광활한 다코타 지역은 미국에서 가장 마지막에 이주민이 정착한 지역 중 하나입니다.

1742년에 최초의 유럽인들이 이 지역을 탐사했습니다. 당시, 이 지역에는 크로우 족(Crow), 샤이엔 족(Cheyenne), 다코타 족(Dakota. 산티 수 족(Santee Sioux)) 등 8개 이상의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지역에는 아직도 아메리카 원주민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1803년 루이지애나 매입을 통해 다코타가 미국의 땅이 되기 전에는 덫 사냥꾼을 제외하고는 이 지역에 발을 들여놓는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1804년, 루이스와 클라크 원정대가 현재의 노스 다코타에서 겨울을 보냈습니다. 1832년 증기선이 들어오고 1862년에 홈스테드 법이 통과되면서, 일부 이 지역으로 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주민과 수 족 간의 긴장 때문에 이 지역을 피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1874년에 이 지역에서 금이 발견되자, 수많은 사람들이 수 족 보호구역의 성스러운 블랙 힐즈(Black Hills)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수 족은 무기를 들고 저항한 끝에 1877년 블랙 힐즈를 미국에 넘겨 주었습니다. 1881년에는 막강한 시팅 불 대추장마저 투항했습니다. ‘인디언 위기’(Indian crisis)가 해결되고 노던 퍼시픽 철도(Northern Pacific Railway)가 완공되면서 1879년과 1886년 사이에 10만 명 이상의 이주민들이 이 지역에 들어왔습니다. 이주민들은 수도의 위치를 놓고 두 편으로 갈렸습니다. 북쪽 지방 사람들은 1883년에 비스마크(Bismarck)를 수도로 지정했고, 남쪽 지방 사람들은 별도의 헌법을 만들어 피어(Pierre)를 수도로 선정했습니다. 의회는 이 문제에 간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지역을 공식적으로 분리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후, 노스 다코타와 사우스 다코타를 연방의 주로 선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