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미 넘치는 마지막 여가수

Sophie Tucker
Sophie Tucker

1884년 1월 13일
연예인 소피 터커 출생


베트 미들러(Bette Midler)나, 로젠(Roseanne)이나, 조언 리버스(Joan Rivers)가 공연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나요? 이 여성들은 모두 활달하고, 재미있고, 솔직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900년대 초의 소피 터커라는 연예인이 이러한 쇼맨십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1884년 1월 13일, 소피 터커는 어머니가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오는 중에 소피 아부자(Sophie Abuza)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부자의 유태인 가족은 미국으로 이민 온 수 백만의 동유럽 출신 가족 중 하나였습니다. 아부자는 노래를 좋아했고, 유머 감각도 뛰어났습니다. 아부자는 코네티컷 하트포드에 있는 아버지의 레스토랑에서 공연을 하기 시작했고, 노래를 불러 팁을 벌었습니다. 루이스 턱(Louis Tuck)이라는 남자와 성공적이지 못한 결혼을 한 후, 아부자는 뉴욕 시로 도망쳐 운을 시험해 보기로 했습니다.

터커는 곧 솔직한 코미디와 허스키한 목소리로 유명해졌습니다. 터커가 자신의 녹음된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내 목소리는 꼭 무적(霧笛. foghorn) 같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터커의 목소리를 좋아했고, 1911년에는 에디슨 사(Edison Company)를 위해 테마 곡인 ‘어느날’(Some of These Days)을 녹음했습니다. 터커의 노래는 이 사진처럼 에디슨 실린더 레코드(Edison Cylinder Records)의 카탈로그에 들어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소비 터커는 1914년에 이미 스타가 되어 있었고 미국과 유럽에서 끊임 없이 순회공연을 했습니다. 터커는 또 개인적으로나 직업적으로 후한 여성이었습니다. 터커는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병사들을 위해 400만 달러 이상을 모금했고, 몇 년 후에는 자서전인 「어느 날 Some of These Days」에서 나온 수익금 전액을 자선단체에 기부했습니다.

소피 터커는 스스로를 ‘야성미 넘치는 마지막 여가수’(The Last of the Red-Hot Mamas)라고 부르기를 좋아했고, 78세가 될 때까지 클럽이나, 영화나, 라디오나, TV, 무대에서 공연을 계속했습니다. 참으로 ‘야성미 넘치는’ 여가수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