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온 자유의 여신

Statue of Liberty
Statue of Liberty

1885년 6월 19일
자유의 여신 상 뉴욕 항 도착


이 발가락은 미국 여성의 발가락이지만, 이 여성은 미국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습니다. 프랑스 국민이 미국 국민에게 보내는 우정의 선물인 자유의 여신 상은 1885년 6월 19일 뉴욕 항에 도착했습니다. 조각가 프레데리크-오귀스트 바르톨디(Frederic-Auguste Bartholdi)의 ‘세상을 밝히는 자유’(Liberty Enlightening the World)는 305 피트 높이의 작품으로서, 미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자유의 여신 상은 강철 지지대로 만든 프레임 위에 청동 판을 붙여서 만든 작품입니다. 어떻게 이 거대한 상이 미국으로 건너오게 되었을까요?

자유의 여신 상을 미국으로 수송하기 위해 이 작품을 350조각으로 해체하고 214개의 상자에 나누어 담았습니다. 4개월 후, 자유의 여신상은 베들로 섬(Bedloe’s Island. 1956년에 자유의 섬(Liberty Island)으로 이름이 바뀜)에서 다시 조립되었습니다. 1886년 10월 28일,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은 수 천 명의 관중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자유의 여신 상을 봉헌했습니다. 그러나, 수 백만 명의 다른 사람들은 자유의 여신 상을 다른 방식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근처에 있는 엘리스 섬에는 1892년에 이민 사무소가 문을 열었는데, 이 이민 사무소는 미국에 들어오는 이민자들을 많이 맞이하는 중요한 곳입니다. 1943년에 이 사무소가 문을 닫을 때까지, 자유의 여신 상은 1,200만 명 이상의 이민자들을 맞았습니다. 자유의 여신 상의 받침대에 새겨진 엠마 라자루스(Emma Lazarus)의 시는 오랜 바닷길을 헤쳐 자유의 여신 상을 보게 되는 수 백만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자유와 기회에 대한 희망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다오, 지치고 가난한 사람들을,
자유롭게 숨쉬기를 갈망하는 무리들을,
바닷가에 겹겹이 지쳐 쓰러진 가엾은 이들을.
거처도 없이 폭풍에 시달린 이들을 나에게 보내다오.

Give me your tired, your poor,
Your huddled masses yearning to breathe free,
The wretched refuse of your teeming shore.
Send these, the homeless, tempest-tost to me.

자유의 여신 상이 영감으로 작용하여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요? 음악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