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두 맥베스

Voodoo Macbeth
Voodoo Macbeth

1936년 7월 25일
공공사업진흥국이 상연한 <맥베스>의 마지막 날 공연


주식시장이 폭락하고 실업이 광범하게 퍼졌던 대공황 때에는 숙련된 근로자도 일자리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루즈벨트 대통령은 실업 상태의 작가와, 배우와, 예술가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공공사업진흥국(Works Progress Administration: WPA)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연방 극장 프로젝트(Federal Theatre Project: FTP)를 발족시켰습니다. WPA는 사람들이 일자리 찾기를 지원하는 국가적 공공사업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린 쇼는 존 하우스먼이 제작하고 오슨 웰즈(Orson Welles)가 감독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였습니다. 1936년 7월 25일은 코네티컷 주 브릿지포트(Bridgeport)의 파크 시어터(Park Theater)에서 <맥베스>를 마지막으로 공연한 날이었습니다. 뉴욕 타임즈의 비평가 브룩스 앳킨슨(Brooks Atkinson)은 이 공연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분노와 유령의 광채로 관중을 압도한다.” 오늘날, 셰익스피어의 연극은 본래와 다른 장소와 시대를 배경으로 상연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당시 갓 스물 한 살이었던 오슨 웰즈는 이 연극에 새로운 접근법을 도입했습니다. 웰즈는 모든 역에 아프리카 계 미국인 배우를 캐스팅했고, 연극의 배경을 스코틀랜드에서 카리브 해로 옮겼고, 마녀를 아이티의 부두교 무당으로 바꾸었습니다. 비평가들은 그 결과를 ‘놀랍다’, ‘탁월하다’, ‘화려하다’고 표현했습니다. 웰즈가 연극의 배경을 왜 바꿨을까요? 연극을 더 재미있게 하기 위해 그랬을까요, 아니면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그랬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