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락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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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7월 8일
주식시장, 대공황 중 최저점 기록


조지 머헤일즈(George Mehales)는 1929년의 주식시장 대폭락에서 레스토랑을 포함해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1929년 10월의 첫 날에는 부자라고 생각했는데… (그 후) 빈털터리가 됐어요… 남은 게 아무 것도 없어요.” 사우스 캐롤라이나에 살던 그리스 이민자인 머헤일즈는 1920년대의 급성장하는 주식시장에서 쉽게 큰 돈을 벌려고 했던 미숙한 여러 투자자 중 한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주식시장은 가진 돈의 일부를 투자하기에는 좋은 곳이 될 수 있지만, 특히 주식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면 아주 위험한 곳이기도 합니다.

대폭락은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고, 심지어는 주식을 사지 않은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사람들은 은행에 돈이 떨어질 것을 염려하여 서둘러 은행으로 가서 저축한 돈을 인출했습니다.
주식시장에 투자해서 큰 손실을 본 은행이 많았습니다. 조지아에 사는 은행 간부인 타플리는 모든 것을 잃을까 두려워 은행을 찾아왔던 군중들을 기억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 사람들은 집과 평생의 저축을 잃고 있었어요. 가장 슬펐던 것은 보험도 별로 든 게 없고 가진 돈은 모두 은행에 넣어 둔 미망인을 보는 거였어요.”

이 대폭락은 대공황을 촉발했습니다. 미국 전역에서 사람들이 돈만 잃은 것이 아니라 일자리도 잃고 있었습니다. 임금을 지급할 수 없게 된 기업들이 문을 닫았습니다. 주가는 계속 떨어져서, 1932년 7월 8일, 대공황 중 최저점을 기록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삶이 크게 변했지만, 좋은 쪽으로 변한 사람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은행 지점장이었던 타플리는 어쩔 수 없이 소유물을 다 팔고 고향을 떠나 일자리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나, 타플리는 운이 좋았습니다. 대폭락이 타플리에게는 그리 큰 손해를 입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타플리는 1940년에 인터뷰 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물론 그 때는 인생이 끝난 줄 알았죠. 그렇지만, 대폭락이 없었다면, 아직도 사우스 조지아의 그 조그만 마을에서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으며 살고 있을지도 몰라요.”

1932년 말에 대통령으로 선출된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경제적 구제를 뉴딜 정책을 미국 국민에게 약속했습니다. 정부는 공업과 농업을 되살리고 미국 국민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여러 기구를 설립했습니다. 은행 산업과 투자 산업에 중요한 개혁이 이루어졌습니다. 은행 예금을 보호하기 위해 연방예금보험공사(Federal Deposit Insurance Corporation: FDIC)가 설립되었고, 주식시장 사기로부터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증권거래위원회(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SEC)가 설립되었습니다. 미국 경제가 대공황에서 회복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대공황은 그 후에도 10년 넘게 계속되었고, 1940년대 초에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군비를 확충하면서 비로소 끝이 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