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필드 공격

1704년 2월 29일
앤 여왕 전쟁 중 매사추세츠 주 디어필드 습격

1704년 매사추세츠의 조그만 접경 정착촌인 디어필드(Deerfield)에 거주하는 정착민들은 주변의 위험을 감지하고 있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의 지배권을 놓고 프랑스군과 영국군이 앤 여왕 전쟁(Queen Anne’s War)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디어필드는 프랑스군의 공격을 받을 위험에 처해 있었습니다. 이에 대비하여, 마을 사람들은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높은 나무 울타리 안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한 겨울에 공격이 있을 거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1704년 2월 29일, 200 ? 300명 정도의 프랑스군과 아메리카 원주민 동맹군이 디어필드를 습격했습니다.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디어필드는 순식간에 침략자의 손에 떨어졌습니다. 남자와 여자, 아이 등 모두 56명의 영국인이 죽었고 100명도 넘는 주민이 눈 속을 걸어 캐나다로 끌려갔습니다. 디어필드 교구를 맡고 있던 존 윌리엄스 목사(Reverend John Williams)도 부인과 다섯 명의 아이들과 더불어 포로로 잡혔습니다. 포로 중 21명이 끌려가는 중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윌리엄스 목사의 부인도 그 중에 포함되었습니다. 그러나, 윌리엄스 목사는 끝까지 살아 남았습니다. 전쟁 포로로 잡힌 지 1년이 넘게 지난 후, 윌리엄스 목사와 60명의 포로가 매사추세츠로 돌아왔습니다. 일부는 캐나다에 남아 아메리카 원주민에 합류하거나 프랑스 사회로 편입되었습니다.

윌리엄스 목사는 캐나다에서 겪은 일들을 1707년에 초판 발행된 「시온으로 돌아온 구원 받은 포로」(The Redeemed Captive Returning to Zion)라는 책에 담았습니다. 함께 끌려갔던 다섯 명의 아이들 중 네 명은 윌리엄스 목사와 같이 돌아왔지만, 딸 유니스 윌리엄스(Eunice Williams)는 캐나다에 남아 모호크(Mohawk) 부족에 합류했습니다. 유니스는 ‘포로로 끌려와 부족의 일원이 된 여자’라는 의미의 ‘A’ongote’라는 이름을 받았고, 1713년에 아메리카 원주민과 결혼했습니다. 1713년에는 앤 여왕 전쟁도 끝이 났습니다. 프랑스와 영국은 1754년에 프랑스-인디언 전쟁(French and Indian War)이 일어날 때까지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전투를 벌이지 않았습니다. 디어필드 주민들은 마을을 재건하고 잠시 편안히 쉴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