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아일랜드의 자유

Return of Roger Williams
Return of Roger Williams from England with the First Charter, 1644. From a painting by C.R. Grant. Engraving from The Providence Plantations for 250 Years, Welcome Arnold Greene, 1886.

1631년 2월 5일
로드 아일랜드를 세운 로저 윌리엄스의 보스턴 도착


여러분은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나요? 미국에서는 사람들이 원하는 종교나 신념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됩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17세기에는 종교의 박해를 피해 영국을 떠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들 중 다수가 자유롭게 종교생활을 하기 위해 미국으로 왔습니다. 로저 윌리엄스는 1631년 2월 5일에 보스턴에 도착한, 종교자유의 수호자입니다.

영국 성공회 목사로 임명된 윌리엄스는 첫 교구 목사의 직을 수행하는 동안 영국 성공회 내부에서 발전한 개혁 운동인 청교주의(Puritanism)을 알게 되었습니다. 윌리엄스는 청교주의로 개종했고, 곧 매사추세츠 베이 식민지(Massachusetts Bay Colony)의 목사 직을 제의 받았습니다. 영국 왕 찰스 1세의 종교적 불관용을 뒤로 하고, 윌리엄스와 그 부인은 대서양을 건너 1631년 보스턴에서 ‘아메리카 실험’(“American Experiment”)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영국 성공회를 개혁하고자 했지만, 곧 완전한 종교의 분리를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윌리엄스의 교구민 중에는 영국 성공회에서 분리한다는 생각에 찬성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후 윌리엄스는 세일렘의 목사가 되었습니다. 윌리엄스는 여기서도 생각이 지나치게 급진적이라는 평판을 얻었습니다. 그 후에는 플리머스로 갔지만 여기서도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윌리엄스는 땅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하려면 아메리카 원주민에게서 강제로 뺏어서는 안 되며 대가를 치르고 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후 윌리엄스는 다시 세일렘으로 갔고, 마침내 종교에 대한 신념 때문에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윌리엄스에게 내려진 처벌은 추방형이었습니다. 그 후 윌리엄스는 나라간세트(Narragansett) 부족으로부터 땅을 사서 로드 아일랜드의 프로비던스라는 정착촌을 건설했습니다.

윌리엄스는 완전한 종교적 관용, 교회와 국가의 분리, 정치적 민주주의(후에 미국 건국의 근간이 된 가치)의 원칙을 토대로 로드 아일랜드 정착촌을 세웠습니다. 이에 따라, 로드 아일랜드에는 종교적 신념 때문에 박해 받는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었습니다. 재세례파(Anabaptists), 퀘이커 교도, 유태인 등이 로드 아일랜드에 정착했습니다. 윌리엄스는 미국 최초의 침례교회를 세운 후, 침례교회가 신앙을 여러 방식으로 자유롭게 추구하도록 했습니다. 또, 친구들이나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설교도 중단했는데, 이는 그들 각자의 신앙도 종교의 자유라는 윌리엄스의 원칙에 부합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윌리엄스는 ‘강요된 예배는 주님의 코에 악취를 풍긴다’고 선언했습니다. 윌리엄스의 이런 생각은 당시로서는 대단히 급진적인 것이었지만, 오늘날 같으면 종교적 자유가 없는 곳에서 사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