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위의 전투

Battle_of_Chattanooga_Thulstrup
Battle_of_Chattanooga_Thulstrup

1863년 11월 23일
채터누가 전투 시작


3일 간에 걸친 채터누가 전투는 미국 군의 역사 상 가장 극적인 역전 드라마였습니다. 이 전투는 1863년 11월 23일에 시작되었고, 전투가 끝났을 때, 연방 군은 남부동맹 군을 테네시 채터누가에서 조지아로 몰아 냈으며, 이로써 1년 후 윌리엄 셔먼 장군이 ‘남부 초토화 작전’(March to the Sea)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때 셔먼 장군은 군대를 이끌고 ‘파괴의 길’을 내면서 남부의 마을들을 초토화하고, 노예를 풀어주고, 애틀랜타와 조지아의 사바나 사이의 마을을 죄 불태웠습니다.

채터누가에는 증기선 항구와 기차 역이 있었기 때문에, 이 전투는 전략적 승리였습니다. 그러나, 1863년 초가을에, 반란군은 채터누가가 내려다 보이는 산악 지대와 절벽으로 이동하여 연방 군을 고립시켰습니다.

테네시 강 계곡(Tennessee River Valley)에서 2천 피트나 위로 솟아 있는 룩 아웃 산(Lookout Mountain)의 높은 진지에 자리 잡은 남부동맹 군은 채터누가에 주둔하고 있던 연방 군의 머리 위로 포탄을 퍼부었습니다. 이들은 연방 군이 점령한 테네시 서부에서 강이나 철도를 통해 마을로 들어가는 보급품 수송대만 골라 포격을 가했습니다. 포위되어 보급로를 차단 당한 연방 군은 패배할 운명인 듯싶었습니다.

그러나, 10월 중순에 조지 토머스(George Thomas) 소장이 지휘관으로 부임하면서 이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그 후 곧 조셉 후커(Joseph Hooker) 소장이 2만 명의 연방 군 병력을 이끌고 이 지역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랜트 장군도 뒤이어 이 지역으로 왔습니다. 조지 토머스 장군은 공병대에게 마을 서쪽에 배를 이어 다리를 만들라(pontoon bridge)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로써 연방 군은 다시 식량과 탄약을 보급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11월 중순에 셔먼 장군이 16,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도착했을 때, 연방 군은 싸울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11월 23일, 토머스 장군의 군대는 채터누가와 산악 지역 사이의 오처드 납(Orchard Knob)을 점령하고 있던 남부동맹 군을 기습했습니다. 그 다음날, 후커 장군은 병사들을 이끌고 룩 아웃 산으로 올라가 ‘구름 위의 전투’를 치르고 승리를 거뒀습니다.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전투는 크레이븐 하우스(Cravens House)에서 벌어졌습니다. 전투의 마지막 날인 11월 25일, 연방 군은 반란군의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남부동맹 군이 조지아 깊숙이 퇴각하도록 했으며, 이로써 나중에 남부동맹 군이 남북전쟁에서 패배하기에 이르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