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와 소가 많은 땅

Montana
Montana

1864년 5월 26일
링컨, 몬태나 준주 승인


이곳은 소떼와 양떼가 풀을 뜯을 초지가 많고 금과 구리가 많이 나는 긴 계곡과 높은 산이 있는 땅이었습니다. 1864년 5월 26일, 링컨 대통령은 이 땅을 미국의 준주로 만드는 법안에 서명했습니다. 이 곳은 어디일까요? 바로 ‘드넓은 하늘의 땅’(Big Sky Country)이라 불리는 몬태나 주의 광활한 공간입니다.

남북전쟁이 진행되는 중에, 링컨은 잠시 싸움에서 눈을 돌려 오늘날 몬태나로 알려진 지역에 관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1889년 11월 8일, 몬태나가 연방의 마흔 한 번째 주가 되기 전까지는 폭력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의 몬태나에는 과거에 크로우 족(Crow), 샤이엔 족, 블랫 풋 족(Blackfoot), 플랫 헤드 족(Flathead) 등 수많은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이 살았습니다. 메리웨더 루이스와 윌리엄 클라크는 루이지애나 매입을 통해 취득한 땅을 백인 중 처음으로 탐험하고 기록했지만, 곧 이주민들이 이들의 뒤를 따라 오게 되었습니다. 미국 군과 땅을 지키려는 아메리카 원주민 간의 전투가 빈번해졌습니다. 1876년 6월 25일, ‘리틀 빅혼 전투’(Battle of the Little Bighorn) 또는 ‘커스터의 최후의 저항’(Custer’s Last Stand)으로 불리는 가장 유명한 전투에서 다코타 족(또는 수 족(Sioux))과 샤이엔 족은 조지 커스터(George Custer) 장군이 이끄는 미국의 정규군을 격퇴했습니다.

이러한 폭력에도 불구하고, 몬태나 이주민들은 금과 구리와, 홈스테드 이주민으로서 비옥한 땅을 얻을 기회를 꿈꾸며 계속 찾아왔습니다. 1880년대에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보호구역으로 강제 이주를 당한 반면, 개척자들이 이 지역으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서부 카우보이에 대한 이미지는 대부분 사진에 보이는, 몬태나 매디슨 카운티(Madison County)의 양치기와 같은 초기의 목동과 여행자에서 따 온 것입니다. 몬태나에 가 보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