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 받는 피터스버그

Siege of Petersburg
Siege of Petersburg

1865년 4월 2일
그랜트 장군의 피터스버그 공격


1865년 4월 2일 일요일 오전 7시경, 율리시즈 그랜트 장군의 군대가 버지니아 피터스버그에서 남부연맹 군 방어선을 공격했습니다. 오후 중간쯤에 남부동맹 군은 마을을 빠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승리는 연방에 아주 중요한 승리였는데, 피터스퍼그가 함락됨으로써 불과 25 마일 떨어진 남부동맹의 수도인 리치먼드의 함락도 기정사실이 되었고, 리치먼드의 함락으로 남북전쟁이 끝나게 되었습니다. 전쟁 사례를 보면 대부분 그렇지만, 이 승리는 쉽게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고, 희생 없이 얻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피터스버그 포위가 9개월 동안 계속된 후에야, 그랜트 장군의 112,000명의 병력이 피터스버그를 사수하던 5만 명의 남부연맹 군의 방어선을 마침내 뚫었습니다. 남부연맹 군에는 지원 병력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연방 군이 피터스버그 법원에 깃발을 꽂았을 때 사상자는 남부동맹 군 28,000명, 연방 군 42,000명에 달했습니다. 그랜트 장군은 다음으로 리치먼드를 점령했습니다. 전쟁의 끝이 눈 앞으로 다가온 상황이었습니다. 리 장군은 4월 9일 애퍼매턱스 코트 하우스에서 버지니아 북부 군과 더불어 그랜트 장군에게 항복했습니다. 그랜트 장군에는 중요한 임무 하나가 남아 있었습니다. 남부동맹의 제퍼슨 데이비스 대통령을 사로잡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데이비스는 피터스버그가 연방 군에 함락되었다는 것을 알자마자 리치먼드를 떠났습니다.

제퍼슨 데이비스 대통령은 리치먼드에 있는 성 바울 교회(St. Paul’s Church)에서 예배를 보던 중에 피터스버그의 함락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날 밤 늦게, 데이비스는 수도를 버리고 버지니아 댄빌(Danville)행 열차를 탔습니다. 데이비스가 떠난 후, 도망치는 북부동맹 군과 약탈자들이 지른 불이 통제할 수 없게 번지면서 리치먼드가 불에 탔습니다. 데이비스는 그로부터 한 달 후인 1865년 5월 10일이 되어서야 연방 군 병사들에게 붙잡혔습니다. 남북전쟁에 대해 어떤 것을 더 알고 있나요? 가족들에게 어떤 것을 더 알고 있는지 물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