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링컨의 날

Abraham_lincoln_inauguration_1861
Abraham_lincoln_inauguration_1861

1861년 3월 4일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취임


1861년 3월 4일 월요일은 에이브러햄 링컨과 미국에 큰 의미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이 날 아침, 링컨과 퇴임하는 제임스 뷰캐넌 대통령이 백악관 근처에 있는 윌러드 호텔을 떠나 국회의사당으로 가는 마차를 탔습니다. 오후 1시가 막 지나자, 로저 테이니(Roger B. Taney) 대법원장이 대통령 취임 선서를 집전했습니다. 이 취임 선서와 더불어, 링컨은 미합중국의 16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링컨의 취임사는 신임 대통령으로서 한 연설일 뿐 아니라 위기에 처한 조국의 지도자로서 한 연설이기도 하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한 연설이었습니다. 링컨은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였습니다. 취임사에서 올바른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많은 이들의 도움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취임사 문안을 작성하는 동안 지침으로 삼고 영감을 얻기 위해, 링컨은 역사적 문서를 참고했습니다. 참고한 문서는 모두 각 주의 권리에 관한 문서였습니다. 링컨은 남부의 7개 주가 연방에서 탈퇴하여 아메리카 남부동맹자주(남부동맹)를 결성한 지 몇 달 후에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남부동맹은 노예제도를 새로운 주로 확대하는 데 반대하는 링컨의 정책에 찬성하지 않았고, 연방을 탈퇴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실행에 옮겼던 것입니다.

링컨은 취임사 초안을 가장 가까운 정치적 조언자에게 보내어 그 의견을 들었습니다. 국무장관으로 내정된 윌리엄 수어드(William H. Seward)는 마지막 부분 몇몇 군데에 아이디어를 보탰는데, 그 중에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결언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광활한 땅의 모든 전쟁터와 애국자의 무덤에서부터, 살아 있는 모든 사람과 가정에까지 이어져 있는) 환상적인 기억의 선율에, 언젠가 우리 본성에 깃든 보다 선량한 천사의 손길이 반드시 다시 와 닿을 것이며, 그 때 연방의 합창은 울려 퍼질 것입니다.”

링컨의 취임사는 감동적이었습니다. 링컨은 연방의 보전을 위해 호소했습니다. 남부를 더 이상 소외시키지 않는 가운데 북부의 지지를 유지하기 위해, 링컨은 타협을 주장했습니다. 링컨은 연방을 유지하기 위해 무력을 먼저 사용하지 않을 것과, 노예제도가 이미 존재하는 주의 노예 문제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링컨은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찰스턴 항에 있는 섬터 요새에 보급품을 전달해야 한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북부와 남부 간의 긴장이 대단히 고조되어 있었기 때문에, 고민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섬터 요새가 노예 주에 있었기 때문에, 이 요새에 보급품을 전달하는 것은 긴장에 불을 댕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링컨은 취임사에서 연방이 섬터 요새와 같은 연방의 영토의 통제권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바 있었습니다. 섬터 요새에는 보급품이 전달되었고, 링컨은 섬터 요새에서 철수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남부동맹이 1861년 4월 12일에 섬터 요새를 공격했습니다. 남북전쟁이 시작되었고, 링컨 대통령은 미국 최대의 위기 중 하나인 남북전쟁의 한 복판에 서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