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트 장군 대 프레리 도그

Ulyssess S. Grant
Ulyssess S. Grant

1863년 5월 19일
그랜트 장군의 빅스버그 공격


미시시피의 빅스버그는 남북전쟁 중에 튼튼한 방어태세를 갖춘, 남부동맹 군의 중요한 요새였습니다. 1863년 5월 19일, 율리시즈 그랜트 장군이 빅스버그를 공격했는데, 이 때 그랜트 장군은 이 도시를 점령할 목적으로 직접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연방 해군은 이미 빅스버그에 주둔하고 있던 펨버튼(C. Pemberton) 장군의 부대에 다른 연대가 합류하지 못하도록 봉쇄를 해놓은 상태였지만, 빅스버그는 완강한 저항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그랜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랜트 장군은 6주 간의 포위전에 돌입하여, 도시를 포위하고, 보급로를 차단하고, 빅스버그에 계속 포격을 퍼부으면서, 빅스버그로 접근해 들어갔습니다. 어떤 경우는 너무 가까이 접근한 나머지 연방 군과 남부동맹 군 병사들이 서로 소리지르면 들리는 거리를 두고 대치한 적도 있었습니다. 6월 중순에는 8만 명의 연방 군이 도시가 내려다 보이는 미시시피 강 절벽 위에 진지를 구축했습니다. 포격을 피하기 위해, 빅스버그 주민들은 집을 떠나 언덕의 동굴에서 기거했습니다. 연방 군 병사들은 이러한 미로 같은 참호를 ‘프레리 도그 마을’(Prairie Dog Village)이라 불렀습니다. 빅스버그 주민들은 굶주리고 지쳐 있었지만,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44일째 되던 날, 마을에 보급품이 들어오지 않자, 빅스버그의 신문인 데일리 시티즌(Daily Citizen)의 편집장은 벽지의 뒷면에 신문을 인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편집장은 그랜트 장군이 7월 4일에 ‘빅스버그에서 저녁을 먹으며’ 독립기념일을 축하하려 한다는 기사를 썼습니다. 이 편집장은 1863년 7월 4일, 펨버튼 장군이 그랜트 장군에게 항복할 것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 신문을 발견한 그랜트 장군의 부하들은 기사에 한 문단을 더 보태어, 그랜트 장군이 실제로 빅스버그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독립기념일을 축하했다고 썼습니다. 빅스버그나, 그랜트 장군이나, 미국 독립전쟁의 수많은 전투에 대해 더 알고 있는 것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