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로 가게나, 젊은 농부!

1862년 5월 20일
홈스테드 법 발효


땅 있어요! 와서 가지세요! 이 포스터는 홈스테드 법 덕분에 미국인들이 땅을 소유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광고하고 있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서부 이주를 장려하기 위해 1862년 5월 20일에 홈스테드 법안을 승인했습니다. 160 에이커의 자기 땅을 가지려면 어떻게 하면 되었을까요? 미국 국민이고 나이는 스물 한 살이면 충분했습니다. 10 달러의 등록 수수료를 내고 서부의 새 농장에서 5년만 살면 그 농장이 자기 땅이 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횡재나 다름 없는 조건이었지만, 이 법을 통과시키는 데는 자그마치 20년이나 걸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북부의 기업가들은 땅을 무료로 나누어 주면 부동산 값이 떨어지고 저렴한 노동력 공급이 감소될 것을 우려했습니다. 남부 사람들은 홈스테드 법에 따라 이주해 온 사람들이 노예제도 폐지 주장에 목소리를 보탤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남북전쟁의 승리로 남부의 항의를 잠재운 연방정부는 마침내 홈스테드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1900년까지 홈스테드 이주민들은 총 60만 건, 8천만 에이커의 땅에 대한 신청서를 냈습니다. 대부분의 개척자들은 캔저스, 네브라스카, 콜로라도, 와이오밍 등 서부의 평야 주로 이주했습니다. 이들은 경제적 번영을 기대했지만, 그곳으로 이주한 것이 도박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홈스테드 이주민들은 그 땅에 처음으로 농사를 짓고, 다른 사람과 멀리 떨어진 경우가 많은 잘 모르는 지방에 사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을 알았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대니얼 프리먼 같은 사람은 최초의 홈스테드 이주민으로 추정되는데, 새 땅에서 경제적 번영을 이룩하기 위해 가족과 마을을 떠났습니다. 일부 이주민들은 가족과 함께 오기도 했습니다. 홈스테드 이주민들은 메뚜기 떼가 옥수수 밭을 몽땅 먹어 치웠다는 이야기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또, 사람들이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서 살았기 때문에 학교도 없고 사교 모임도 없는, 고립된 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남겼습니다.

어려운 시기도 겪었지만, 일부 농장주는 성공하여 더 많은 땅을 모았습니다. 철도가 놓여 동부에 가기가 쉬워졌고, 소고기 수요도 늘어나면서 목장도 잘 되었습니다. 1860년에서 1880까지의 기간 동안 평야 주의 소는 13만 마리에서 450만 마리로 늘어났습니다. 여러분이 1862년에 살았다면, 홈스테드 이주민이 되어 서부로 떠났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