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안식처

National Cemeteries
National Cemeteries

1862년 7월 17일
미국 정부, 국립묘지 조성 승인


전투 중에 전사한 병사는 어떻게 처리되나요? 남북전쟁 중에는 전쟁터나, 야전 병원이나, 포로 수용소에서 죽은 병사들은 죽은 곳에서 그대로 묻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유해 수습 팀이 전사자들을 급하게 묻었을 법한 곳을 모두 찾아가 유해를 수습하여 고향으로 보냈습니다. 이 작업을 완료하는 데는 5년이 걸렸고, 25만 구 이상의 유해가 수습되었습니다.

1862년 7월 17일, 링컨 대통령은 미국 정부가 국립묘지를 조성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에 서명했습니다. 1870년까지 73개의 국립묘지가 조성되었으며, 이 중에는 남북전쟁 중에 전투가 많이 벌어졌고 야전 병원이 많이 있었던 남부에 조성된 국립묘지가 많았습니다.

“우리는 이들이 헛되이 죽어가지 않았다는 것을 굳게 믿습니다. 신의 가호 아래 이 나라는 새로운 자유의 탄생을 보게 될 것이며,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이 지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링컨 대통령은 1863년 11월 19일, 펜실베이니아 게티즈버그에서 국립묘지를 봉헌하면서 이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링컨 대통령의 이 짧은 연설은 ‘게티즈버그 연설’(Gettysburg Address)로 알려졌고 미국 역사 상 가장 자주 인용되는 연설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미국의 국립묘지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곳은 버지니아 알링턴에 있는 알링턴 국립묘지입니다. 전사한 장병과, 참전 용사와, 미국의 대통령과, 정부 지도자들이 모두 이곳에 묻힙니다. 알링턴 국립묘지에는 무명 용사의 묘가 있는데, 이는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우다 죽은 장병 중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사람들을 기리는 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