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 상 가장 비극적인 전투

The Battle of Antietarn
The Battle of Antietarn

1862년 9월 17일
앤티텀 전투


새벽녘, 남북전쟁 중에 연방 군과 남부동맹 군이 밀러 농장 옥수수 밭(Miller farm cornfield)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면서 메릴랜드의 샵스버그(Sharpsburg)의 언덕은 천둥 같은 포성과 머스킷 총성으로 가득했습니다. 세 시간 동안 전선은 전진과 후퇴를 반복했습니다. 1862년 9월 17일, 미국 역사 상 다른 어떤 날 보다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오전의 중간쯤에 로버트 리가 이끄는 남부동맹 군은 시골길의 높은 방벽 뒤에 매복하고 돌격해 오는 연방 군에게 사격을 가했습니다. 그러나, 연방 군의 조지 맥밀런(George B. McClellan) 장군은 전략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습니다. 척후병이 남부동맹 군의 전투계획을 입수했기 때문입니다.
압도적인 수의 연방 군 병력이 남부동맹 군의 방어선을 뚫고 돌격했습니다. 연방 군의 총탄이 시골길에 매복하고 있는 남부동맹 군 병사들의 머리 위로 쏟아졌고, ‘선큰 로드’(Sunken Road)라 불리던 이 길은 엄청난 사망자를 낸 이 전투 때문에 ‘핏길’(Bloody Lane)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남부동맹 군은 ‘돌담’ 잭슨 장군의 포대의 엄호를 받아 샵스빌 방향으로 퇴각했고, 연방 군은 이를 추격하지 않았습니다. 앰브로즈 번사이드(Ambrose Burnside) 장군이 이끄는 연방 군의 2차 공격에 대항해야 할 시점에 맞춰 남부동맹 군 지원 병력이 도착했습니다.

밤이 되자, 샵스빌을 남부동맹 군이 점령했으나, 전투는 연방 군의 승리로 돌아갔습니다. 이 전투에서 23,000 명 이상이 전사하거나, 부상 당하거나, 행방불명 되었습니다. 그 다음날, 리 장군은 포토맥 강을 건너 퇴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연방에 남아 있던 노예 주인 메릴랜드에서 신규 병력과 보급품을 보강하려던 리 장군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리 장군은 다음해인 1863년에 연방의 영토를 다시 한 번 공격하게 되는데, 이 때 펜실베이니아의 게티즈버그에서 유명한 게티즈버그 전투를 치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