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문서

Historical Docu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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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가 형태를 갖추는 과정에 일조한 역사적인 문서에 대해 알아보자.

독립선언서: 1776년

독립선언서는 미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에 속한다. 독립선언은 13개 식민지 전체가 공식적으로 영국의 지배로부터 독립을 선포한 사건이었다.

식민지 주민들은 정부를 상대로 발언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1765년에 인지세법이 제정되자 법률 서류, 신문, 카드 등 모든 종이류에 세금이 부과됐다. 이에 대한 항의 표시로 1773년 보스턴항에 정박한 상선에 실려 있던 영국산 차를 바다에 내던진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오늘날에는 ‘보스턴 차 사건’이라고 부른다. 미국 식민지는 1775년에 영국을 상대로 전쟁에 돌입했다.

미국 식민지와 영국 간에 벌어진 전쟁을 독립전쟁(1775~1783년)이라고 부른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1776년 여름에 일단의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존 애덤스, 벤자민 프랭클린, 토마스 제퍼슨, 로버트 R. 리빙턴, 로저 셔먼이 그 모임에 동참했다.

독립선언서의 작성

독립선언서는 토마스 제퍼슨이 초안을 기안했다. 그 후에 벤자민 프랭클린, 존 애덤스, 토마스 제퍼슨이 공동으로 문안을 수정했다. 독립선언서 최종본은 1776년 7월 4일에 채택됐지만 실제 서명은 1776년 8월 2일에 가서야 이뤄졌다.

독립선언서의 작성과 서명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지만 국가를 세우기 위한 중요한 과정 중 하나였다. 독립선언서에서 유명한 구절 가운데 하나로 ‘우리는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하며 창조주로부터 생명, 자유, 행복 추구 등 불가양의 권리를 부여받았다는 사실을 자명한 진리로 신봉한다’를 들 수 있다.

독립선언서에 관한 사실과 정보:

  • 최초 서명자는 존 행콕이었다. 그의 서명이 너무나 크고 굵었던 까닭에 당시 세간에서는 ‘존 행콕’을 서명을 뜻하는 표현으로 사용할 정도였다.
  • 독립선언서는 워싱턴DC에 있는 국립문서기록관리청 로툰다 홀에서 일반에 전시되고 있다.

연합헌장: 1777~1789년

미국 식민지들은 독립전쟁(1775~1783년) 기간 동안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싸웠다. 식민지들은 신생 정부를 수립할 필요가 있었다. 그에 따라 수립된 최초의 정부 체계가 연합헌장(Articles of Confederation)이다. 연합헌장은 1777년 11월 15일에 채택됐다.

연합헌장에 의해 대부분의 권한은 주정부에 주어졌다. 중앙 정부는 주나 개인에 대한 권한이 제한적이었던 탓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더욱 강력한 중앙 또는 연방 정부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각 주의 지도자들이 회합을 갖고 그 방안을 논의했다. 각 주의 대표들은 1787년 제헌회의를 소집하여 미국의 헌법을 제정했다. 이 헌법은 1789년에 연합헌장을 대체했으며 이를 기초로 보다 강력한 중앙 정부가 수립됐다.

연합헌장에 관한 사실과 정보:

  • 연합헌장은 새롭게 자유를 획득한 식민지들을 ‘미합중국’으로 지칭했다.
  • 연합헌장이 공식적으로 승인을 얻기까지 4년이 걸렸다.
  • 만약 퀘벡이 연합헌장의 조건에 동의했다면 미국의 한 주가 될 수도 있었지만 퀘벡은 동의를 거부했다.

미국 헌법: 1789년

미국 헌법은 국가의 토대를 형성한다. 미국 헌법은 정부의 체계와 국민의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헌법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전문은 정부와 헌법의 목적을 명시하고 있다. 본문은 정부의 조직과 개헌 절차에 관해 기술하고 있다. 수정 조문에는 헌법 개정 사항들이 수록되어 있다. 수정 헌법 1조에서 10조까지를 권리장전이라고 부른다.

1600년대 초에 영국 국왕은 대서양 해안을 따라 미국 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했다. 이민이 식민지로 이주한 이유는 다양했다. 일부는 돈을 벌기를 원했으며 다른 일부는 종교의 자유를 갈구했다. 1700년대에 이르자 식민지는 모두 13곳으로 늘었다. 하지만 식민지 주민들은 자신들을 규율하는 법률에 대해 발언권이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 세금만을 납부하는 현실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은 결국 미국과 영국 간의 독립전쟁(1775~1783년)으로 비화됐다.

독립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는 주마다 각기 고유한 헌법을 시행하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자 전체 주가 힘을 모아 연합헌장을 기초로 연방 정부를 수립했다. 연합헌장은 미약한 정부 체계로 판명이 났으며 이를 개선할 필요가 있었다.

미합중국 헌법의 작성

각 주의 대표들이 1787년 제헌회의에 집결했다. 대표들은 헌법에 포함될 사항들을 놓고 토론을 벌였다. 규모가 큰 주들은 의회에서 더 많은 의석을 배정받기를 원한 반면에, 규모가 작은 주들은 동수의 의석을 배정받기를 희망했다. 대표들은 상원에는 동수의 의석을 배정하고 하원에는 인구에 비례하여 의석을 배정하는 양원 제도를 수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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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헌법은 견제와 균형을 보장하기 위해 행정부와 사법부를 설립했다. 3부는 어느 한 부가 다른 부보다 비대해지는 것을 막는 권한을 갖는다. 헌법은 1787년 9월 17일에 국민에게 공개됐다.

헌법은 수정이나 개정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살아 있는 문서로 통한다. 미국 헌법은 최초 비준 또는 공식 승인 이래로 지금까지 개정된 횟수가 고작 27회에 불과하다. 오랜 세월에 걸쳐 개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헌법은 오늘날까지 기본적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 헌법에 관한 사실과 정보:

  • 제헌회의는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독립기념관에서 소집됐다.
  • 헌법은 전체 주의 3분의 2가 헌법안을 비준함에 따라 1788년 6월 21일에 법률로 확정됐다.
  • 13개 식민지는 후에 코네티컷 주, 델라웨어 주, 조지아 주, 메릴랜드 주, 매사추세츠 주, 뉴햄프셔 주, 뉴욕 주, 뉴저지 주, 버니지아 주, 노스캐롤라이나 주, 펜실베이니아 주, 로드아일랜드 주, 사우스캐롤라이나 주가 되었다.

권리장전: 1789~1791년

1789년에 헌법이 승인된 이후에 일각에서 헌법이 몇몇 기본권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러한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헌법을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1791년 12월 15일에 헌법이 수정됐다. 이 10개 항의 개정 혹은 수정 조항들은 각각 구체적인 자유와 권리를 보장한다. 이를 통칭하여 권리장전(Bill of Rights)이라고 부른다.

권리장전에는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로 간주하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개별 수정 조항들의 핵심적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수정 헌법 제1조 :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
  • 수정 헌법 제2조 : 총기를 소유하고 휴대할 수 있는 권리
  • 수정 헌법 제3조 : 군인이 민간인 소유의 주택에 숙영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조항
  • 수정 헌법 제4조 : 불합리한 수색과 압수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조항
  • 수정 헌법 제5조 : 자기부죄거부, 일사부재리, 정당한 보상 없는 공용침해 금지 원칙을 규정한 조항
  • 수정 헌법 제6조 :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 배심원재판을 받을 권리,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 수정 헌법 제7조 : 일정 금액을 초과하는 민사사건에서 배심원재판을 보장하는 조항
  • 수정 헌법 제8조 : 과중한 보석금이나 벌금과 잔인하고 비정상적인 형벌을 금지하는 조항
  • 수정 헌법 제9조 : (권리장전에) 권리가 열거됐다고 해서 다른 권리의 존재를 부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점을 규정한 조항
  • 수정 헌법 제10조 : 연방정부에 위임되지 않은 권한은 주정부나 국민에게 유보된다고 규정한 조항

권리장전에 관한 사실과 정보 :

본래 총 12개 수정 조항이 발의됐으나 처음 2개 조항은 채택되지 않았다.

권리장전은 1776년에 조지 메이슨이 작성한 버지니아 권리장전의 영향을 받았다.

노예 해방령: 1863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1861~1865년)이 한창이던 1862년 9월 22일에 1차 혹은 예비 노예 해방령을 선포했으며 남부 주들은 연방을 탈퇴하거나 분리 독립을 선언했다. 1863년 1월 1일에 발효된 최종 노예 해방령은 남부 연합 주에 “노예로 억류된 모든 자”는 “자유이며 지금 이 순간 이후로 자유의 몸”이고 동맹군은 그들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싸울 것임을 선포했다. 노예 해방령은 “미합중국에 반란을 일으킨” 주에 국한하여 적용됐다.

더불어 노예 해방령은 자유를 얻은 노예들이 동맹이 추구하는 명분에 동참하여 반란을 일으킨 남부 연합 주에 맞서 싸울 것을 독려했다. “또한, 적합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자는 미합중국 군대에 입대하여 요새, 진지, 부대, 기타 장소에 배치되고 모든 유형의 함선에 승선할 것이라는 점을 선언하고 공표한다.”

워싱턴DC에 위치한 정부간행물출판국은 1862년에 예비 노예 해방령 포고문 15,000부를 인쇄하여 전쟁부에 전달했다. 이 포고문은 각군 사령관, 부대, 해외 주재 외교관들에게 배포됐다. 이는 노예제의 종식 혹은 폐지를 향한 중요한 첫걸음이었다. 노예 해방령은 1865년 12월에 미국에서 노예제를 영원히 종식시킨 수정 헌법 제13조가 통과되는 길을 열었다.

노예 해방령에 관한 사실과 정보:

  • 노예 해방령은 해방 노예가 동맹군에 입대할 것을 독려했다. 남북전쟁이 끝날 때까지 20만 명에 육박하는 흑인 병사와 수병이 북부 동맹 편에서 싸웠다.
  • 노예 해방령 원본은 워싱턴DC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보관되어 있다.

게티스버그 연설: 1863년

게티스버그 연설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1863년 11월 19일 펜실베이니아 주 게티스버그 군인국립묘지(오늘날의 게티스버그 국립묘지) 제막식장에서 행한 연설이다. 이 제막식은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순국한 병사들의 희생을 기리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행사였다.

1863년 7월 1~3일에 벌어진 게티스버그 전투는 남북전쟁(1861~1865년)에서  가장 참혹했던 전투 중 하나였다. 사흘 동안 계속된 이 전투에서 북부 동맹과 남부 연합은 7천 명 이상의 사망자를 기록했다. 45,0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으며 1만 명 이상이 포로로 잡히거나 실종됐다. 게티스버그 국립묘지는 게티스버그에서 목숨을 잃은 북부 동맹군 병사 3,500여 명에게 영원한 안식처를 제공할 목적으로 설립됐다.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지금으로부터 87 년 전에 건국의 아버지들은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평등하다는 믿음 아래 자유로 잉태된 국가를 이 땅 위에 세웠습니다.” 이 연설에서 링컨은 1863년 당시로부터 87년 전이었던 1776년을 지칭했다. 링컨은 1776년에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건국의 아버지들이 세운 조국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선언했다.

게티스버그 연설에 관한 사실과 정보:

  • 워싱턴DC에 있는 링컨 기념관을 방문하면 링컨 대통령 동상 옆 벽면 한쪽에 게티스버그 연설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링컨의 연설은 불과 2분 만에 끝이 났으며 연설문에 포함된 단어의 수는 고작 272개였다. 같은 날 연설을 행한 연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에드워드 에버렛의 연설 시간은 2시간에 달했다